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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크레디트스위스의 퇴장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03-22 13:35:03

이 기사는 2023년 03월 22일 13: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1856년에 스위스 철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워졌던 은행이다. 알프레드 에셔가 창업자다. 에셔는 1882년에 개통된 스위스 공학기술의 정수 고타(Gotthard) 터널을 지은 사람이다. 약 15킬로미터다. 스위스 남쪽 괴세넨과 이탈리아 북쪽 아이롤로를 연결한다. 세계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애물인 알프스산맥이 극복되었다.

CS와 함께 스위스 양대 은행인 UBS는 1862년 설립되었고 1912년에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1854년에 6개 은행연합으로 출범했던 SBC와 1998년에 합병했다. UBS는 2023년 3월 19일 부실화 한 CS를 흡수합병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로써 UBS의 스위스 금융시장 점유율은 50%를 넘게 된다.

CS의 부실 문제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8개월 전에 CS라는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는 특집 보도를 내기도 했다. CS의 이런저런 자구책과 스위스 연방은행의 구제 금융도 별 효과가 없어서 3월 중순 한 주에만 100억 프랑의 예금 인출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사태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도산과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그런데 UBS는 M&A에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기업실사도 없이 며칠만에 CS 인수를 결정해야 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서다. 일부 언론에서 강제 결혼(shotgun wedding)에 비유하는 이유다.

이번 인수거래에서 특이한 점은 코코본드로 불리는 채권(신종 자본증권: AT1) 보유 채권자들의 순위를 주주들 뒤로 두었다는 것이다. 주식으로의 전환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즉, CS의 해당 채권자들은 우리 돈 약 22조6천억 원 규모 채권 전액을 상각당하지만 CS 주주들은 합병으로 UBS 주식을 교부받는다. 매우 특이한 합의다. 스위스법이 이를 허용하고 양사의 채권발행 약관에 규정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스위스 밖의 채권자들은 대경실색일 것이다. 이들에게 주주가 채권자에 우선한다는 것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릴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코코본드 가격은 폭락하고 이자율은 급등했다.

당연히 소송이 준비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채권자가 미국을 포함한 스위스 밖 국가의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쉽지 않다. UBS, CS 공히 막대한 해외 자산을 보유한다.

UBS의 주주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CS 입장에서는 헐값에 회사가 넘어간 것이지만 UBS 주주의 입장에서는 어떤 위험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실사도 거치지 않은 인수 가격이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메릴린치를 인수했던 사례에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수 결정 후 부실이 발견되었고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으로 드러나 주주들이 계약 해제를 요구하면서 경영진에 소송을 준비했다. 금융당국의 압력으로 계약 해제는 무산되었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 회장은 물러나야 했다.

여러 가지 법률 문제들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부까지 나서서 주말 동안에 급속도로 딜을 성사시킨 것은 파급효과 때문이다. 금융은 실물의 이동이 수반되지 않고 디지털 신호로 의사표시와 정보가 교환되기 때문에 거의 빛의 속도로 상황이 진전된다. 심리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위험의 전이를 차단하는 것이 필수다. 법률적 문제는 그 심각성에 따라 사후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 이사회, 경영진으로서는 상황 악화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금융 위기 발생은 누구에게나 손해다.

취리히역에서 내려 반호프슈트라세를 따라 내려가면 넓은 광장에 사보이호텔이 있다. 이 호텔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UBS와 CS 건물이 대각선으로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취리히의 명물 하늘색 전차가 광장을 가로지른다. 금융의 나라 스위스를 상징하는 장소다. CS 건물은 고색창연하고 UBS 건물은 현대적이다. 이제 합병거래가 종결되면 두 건물 다 열쇠 세 개와 붉은색 UBS 로고가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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