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1월 10일 09: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톱티어 2차전지 전극장비업체 씨아이에스(CIS)가 종합장비업체 에스에프에이(SFA)에 인수된 지 7개월이 지났다. 인수·합병(M&A) 이후 7개월은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하는 데만 해도 바쁜 시간일 수 있지만, 이 기간 씨아이에스와 에스에프에이는 큰 도전과제까지 해냈다. 서로의 기술을 접목해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2차전지 분야에서 고객사로부터 전극부터 화성공정까지 턴키(일괄수주) 수주가 가능해지는 만큼 영업경쟁력 강화가 기대되고 있다.

양사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게 중요한 만큼 SFA에서 연구개발(R&D) 2센터장을 맡았던 김동진 상무가 CIS로 옮겨와 회사를 이끌고 있다. 김동진 CIS 대표(사진)를 지난달 30일 대구 동구 봉무동 본사에서 만났다.

◇코터에 레이저 기술 활용, '게임체인저' 될 것

김 대표는 더벨과의 첫 인터뷰에서 "(SFA의 CIS 인수는)서로 필요한 시점에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선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추진하면서 전기자동차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2차전지 제조장비 업체도 장기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모회사 SFA로서는 제품군을 다각화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2차전지 공정은 전극과 조립, 화성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CIS는 SFA의 제품군에 없는 전극 공정 장비 분야에 특화돼 있다. SFA는 CIS를 인수함으로써 턴키 공급 역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턴키수주가 가능해지면서 영업경쟁력도 강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해외기업과 (CIS와 SFA 장비 턴키 수주를) 협의 중으로 내년에는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턴키로 수주하면 운영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CIS는 지난 3월 SFA에 인수되고 곧바로 공동 R&D를 착수, SFA가 가진 레이저 기술을 접목해 세상에 없던 전극 공정장비를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 출시한 '하이브리드 코터'가 그 주인공이다. 코터는 집전체에 양극과 음극 활물질과 도전재, 바인더 등이 섞인 슬러리를 균일하게 코팅한 뒤 열풍으로 건조해 주는 장비다. 기존 코터는 열풍으로 건조했다면 CIS는 SFA의 레이저 기술을 추가해 '하이브리드'로 만들었다. 열풍건조를 하되 중간중간 레이저를 쏘아주면서 건조 속도를 높인 것이다.

빠르게 건조되면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외에도 장비 길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코터 장비는 한 대 길이가 100m가 넘는다. 고객사 입장에서 공장 안에 들일 장비 크기가 축소되면 그만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또 기존보다 건조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코팅을 좀 더 두껍게 해 전극 밀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실제로 고객사들과 레이저 건조를 했을 때 품질이 어떤지 시험해 봤는데 일반 열풍 건조를 했을 때보다 더 좋았다"며 "다른 코터 제조사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반면 하이브리드 건조는 CIS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코터 장비가 판을 흔들 게임체인저로 기대하고 있다.

2027년께부터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고체와 LFP(리튬인산철) 전극 공정 장비를 준비 중"이라며 "전고체의 경우 소재가 고체니까 건조 과정 없이 바로 붙이면서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어야 해 코터가 롤프레스와 비슷한 개념이 된다. 대신 슬리터(자르는 장비)는 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주잔고 8000억, 내년 하반기부터 매출 인식

CIS는 올해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수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수주잔고는 8170억원으로 '역대급'이다. 다만 매출은 3분기(누적) 약 888억원이다. 발주가 계속 들어와도 매출로 인식되기까지 1년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게 2차전지 장비사업의 특징이다.

처음 수주가 들어오면 계약금 일부만 받고 원재료를 구입한 후 제작에 들어간다. 이렇다 보니 수주가 늘어날수록 처음엔 운전자본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주가 급증하자 CIS는 SFA를 대상으로 총 8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해 조립장 두 곳을 늘리고 운영자금을 확보해 뒀다. 모회사의 지원으로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관건은 지금 쌓여있는 수주가 언제부터 매출로 인식되느냐다. 수주잔고가 8000억원대라는 건 언젠가는 매출로 인식된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내년 하반기부터는 크게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CIS의 매출은 약 1500억원이었다. 김 대표는 "올해는 전년 보다 성장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이어 2025년부터는 좀 더 (가파르게)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하이브리드 코터라는 신개념 전극공정장비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기대감을 키운다. 더 멀리 내다보면 LFP와 전고체 전극 장비를 미래 먹거리로 준비 중이다. 또 인공지능(AI) 기반 기술을 넣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고도화하는 등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재료는 많다고 김 대표는 자신있게 말했다.

김 대표는 "일감은 충분히 확보가 돼 있는 만큼 이제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이익 개선여부가 달렸다"며 "(납기) 일정 단축과 기술 고도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IS답게' 경영하는 게 목표"

김 대표는 "현재 인력들의 역량을 레벨업하기 위해 사내에 데모 장비를 두고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역량이 늘면 납기도 단축하고 장비 품질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이 장비를 설계하고 조립하지만 수출하려면 다시 해체해 포장해 보내는데, CIS 공장에 데모 장비를 설치해 둬 직원들이 계속 돌려보고 연구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사람이 많아야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게 아니다. 장비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20명이냐, 50명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라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명 CIS는 'Creative & Innovative System'의 약자다. 이름처럼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만 (경영)하면 되겠다 싶다. 여기에 S만 'Smart'로 바꿔 스마트하게 운영하고 싶다"며 "세계 최고 기술력이 탑재된 전극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고객들이 고품질 전지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우리의 사명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