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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한솔 vs 무림]교육·산업 근대화에서 찾은 '제지업' 기회[태동&성장]①"교과서·신문·산업 근간은 종이" 셈 빨랐던 이병철·이무일 창업회장

허인혜 기자공개 2023-12-05 07:30:51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29일 16:33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60년대는 국내에 갓 근대 교육이 자리를 잡을 때다. 이 시기 교육 특례법이 제정됐고 학교법과 교육과정 개편도 이뤄졌다. 정부 주도 사업은 곧 돈이 되는 길이고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회장이 그 기회를 지나칠 리 없었다. 교육 근대화를 목도한 이병철 창업회장은 '교육과 출판'을 뜰 만한 사업으로 낙점한다. 당시 교육과 출판의 기본은 종이였다. 그렇게 인수한 곳이 지금의 한솔제지인 새한제지다.

무림페이퍼의 역사는 한솔제지보다도 더 길다. 1956년 출범했다. 국내 산업이 팽창하며 산업용 종이인 '백상지'의 가치를 알아보고 뛰어든 게 무림의 시작이다. 교육과 산업 등 모든 부문에서 근대화가 태동했던 시기 종이 시장은 찬스였고 한솔과 무림이 이를 알아본 셈이다.

하지만 성장기는 영원할 수 없다. 특히 종이와 같은 수단은 대체와 발전이 빠른 분야다. 디지털 시대라는 수식어는 이제 붙이기 민망할 만큼 당연한 조건이 됐다. 기록 매체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며 페이퍼리스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한솔과 무림은 굴지의 제지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지 양강의 태동과 초기 성장기를 들여다 본다.

◇교육 성장기 포착한 이병철, 한솔그룹의 시작

한솔제지의 태동과 성장은 정보의 전달과 함께 했다. 태동은 교육이었고 성장은 미디어와 발 맞췄다. 한솔제지는 1965년 대한교과서의 교과서 용지를 만드는 자회사로 출발했다. 이 창업회장이 1965년 사들였고 1968년 사명을 전주제지로 바꾼다.

앞서 1965년 이병철 창업회장이 중앙일보를 창간한 것도 전주제지 인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신문지는 귀한 종이였다. 한솔제지는 삼성그룹 계열사 시절 중앙일보에 신문지를 공급하며 자리를 잡는다. 전주제지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1970년대 30%까지 성장한다.
한솔제지의 전신인 세한제지공업회사 전경. 사진=한솔그룹

전주제지의 성장 기반은 1979년 설립한 제지 연구소다. 국내 제지 기술을 선도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연구소다. 이병철 창업회장의 장녀인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주도로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1981년 국내 첫 종이 100만톤(t) 생산을 기록하는 등 국내 제지업계의 레코드를 이끌었다.

전주제지는 1991년 11월 삼성으로부터 독립한 뒤 그룹사로 성장한다. 전주제지가 분리될 때 이인희 고문이 물려받았다. 이인희 고문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길 수 있는 큰 재목감"이라며 아쉬워했을 만큼 아끼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솔제지라는 사명은 독립 이듬해 지었다. 범삼성가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인희 고문의 아들들이 한솔그룹을 이끌고 있다.

◇'새하얀 산업용지'에서 기회 본 무역통…무림그룹

이무일 무림그룹 창업회장은 무역을 하다 종이에서 기회를 봤다. 이무일 창업회장은 해방 후 1952년 삼경무역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주요 무역물품이 종이류였다. 사무용지인 백상지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국내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956년에는 연간 총수입액 5900만 달러 중 지류 수입액이 1300만 달러나 됐다.

1959년 국내 최초로 백상지를 생산한 무림. 사진=무림그룹
그렇게 사들인 곳이 무림그룹의 모태인 청구제지다. 무역업으로 인연을 맺었던 제지사로 백상지 국산화를 위해 아예 지분을 매입해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됐다. 무역통이었던 이무일 창업회장이 이탈리아에서 종이를 뽑는 기계 초지기(paper machine)를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3년간 이무일 창업회장은 기술자들과의 숙식을 자처했다고. 1959년 국내 최초로 국산 백상지를 생산한다.

청구제지 출범 5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룬 뒤 먼저 한 일은 사명을 바꾸는 것이었다. 사원 공모 등을 거쳐 최종 낙점한 이름은 울창한 숲이라는 뜻의 무림(茂林). 무림제지는 1978년 대림팔프공업(동서펄프공업, 현 무림페이퍼)을 설립하고 1984년 삼성제지를 인수하며 사세를 불렸다.

무림그룹을 그룹사로 키운 건 선대 회장이고, 전국구 기업으로 확장한 인물은 2대 이동욱 회장이다. 이동욱 회장은 이무일 창업회장의 차남으로 1989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회장에 올랐다. 무림페이퍼의 고향은 대구와 부산 등 영남 지방이었는데 이동욱 회장 체제 아래에서 전국구에 지류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출발지가 달랐던 한솔과 무림은 각자의 영토를 구축해 평화로운 양강 체제를 이어왔다. 1990년대 전까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양 그룹의 리더와 지배구조가 바뀌며 경쟁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이후 두 그룹이 종이 사업의 범위를 넓히며 교집합이 생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경쟁구도는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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