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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신년사, 이재용의 침묵 [thebell desk]

김장환 산업2부장공개 2024-01-22 08:02:29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8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생 이슈 앞에서는 '협력업체도 삼성가족'(1989년 1월)이란 말로 화답했고 카피캣 논란에는 '더 이상 재래식 모방과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안된다'(1997년 1월)고 다그쳤다. 조직이 현실에 안주한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 생각해야 한다'(2012년 1월)고 당부했고 국가 경제위기 상황에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고 국민경제에 힘이 돼야 한다'(2013년 1월)며 전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고 이건희 회장이 생존했던 시절 해마다 내놓던 신년사 중 일부다. '1등 기업' 삼성의 한 해 경영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었을뿐 아니라 임직원 모두가 애사심을 키울 수 있는 경영 메시지를 듬뿍 담은 신년사를 매해 내놨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 회장의 어록 중 다수가 여기서 탄생했다. 단순 삼성 내부뿐 아니라 재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한 메시지들이다.

메시지 경영은 다른기업 오너, CEO들도 가장 신경쓰는 전략 중 하나다. 잘 쓰인 경영자의 메시지는 그 기업이 가진 핵심 가치와 대외 존재감을 단번에 부각시키는 '일거양득' 효과를 갖고 있다.

'승어부'(勝於父)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재용 회장은 올해도 신년사를 패싱했다. 별 것 아닌 일 같지만 삼성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쉬움을 느낀 직원이 많은 듯하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고 앞서 2022년 말에는 회장으로 승진하자 다수 임직원들 사이에서 "올해야말로 이 회장의 경영 메시지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내심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희 회장 시절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성대하게 열린 신년하례식까지 바란 것도 아닌데 작은 메시지 하나 없었다.

삼성 모 직원에게 이재용 부회장이 복귀 후 내놓은 메시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니 '화장실'과 '(갤럭시)워치'라고 답한다. 에버랜드를 방문해 화장실의 구조 및 청결 상태를 칭찬한 일과 임원진 회의에 '집중하라'며 휴대폰과 워치를 갖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다.

에버랜드 화장실 상태를 따르기 위해 시찰을 오는 계열사 임원들이 그 뒤로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부서 작은 단위의 회의인데도 시계를 풀고 휴대폰도 끄고 '집중해서' 진행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번번이 떨어졌다고 한다. 회장의 사소한 발언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실천하는 게 바로 기업의 직원들이다.

이 회장의 신년사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지난 수년 동안 정치권 게이트와 분식회계 사건으로 크게 흔들렸던 삼성이 마침내 안정화돼 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인텔에 반도체 판매 세계 1위 자리를 내어줄 만큼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와중에 경영자의 해법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메시지란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삼성 임직원들의 바람은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정도의 대단한 메지시를 원하는 게 아니다. 경영자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신년사가 떠오른다.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1993년 시작한 신경영 20년을 마감하고 제2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을 명확히 피력했다. 일명 '마하경영 선언'으로 불린다. 당시 신년사의 근간인 2013년의 경제 상황은 2023년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비슷한 시대상에 내놓은 아버지의 유지다. 이를 이어받은 이 회장의 경영 방향은 무엇인가. 머지 않은 시점에 이 회장이 직접 쓴 경영 메시지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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