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1년 04월 22일 08시5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을 향한 시장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등급 인플레이션 논란, 건설사들의 도미노 도산, 평정 시기의 적정성, 여기에 삼부토건 사태까지. 줄지어 터지는 악재에 신평사들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시장의 비난은 신랄하고 합당했다. 신평사들도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눈치다. 한 신평사 임원은 "(비난을)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부 연구원들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점쟁이냐"고 한탄했다. 시장 일각에선 "신평사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동정론마저 일었다.
신평사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일부 수긍가는 점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과오를 덮을 수는 없다. 확실히 시비를 가려 책임을 물어야 옳다.
신평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장은 신평사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신평사의 '존재 의의'는 대체 무엇인가?
신용평가란 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재무상황 등을 고려해 발행자의 신인도를 등급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발행자의 차입금 상환능력을 표시하는 일종의 '지표'인 셈이다. 한 평가사 연구원은 스스로의 역할을 '감시견(Watch dog)'으로 규정지었다.
신용평가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발행자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신평사들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저버리고 있는 듯 보인다. 시장의 눈치를 살피고 고객들의 요구에 휘둘리느라 합리적이고 일관된 평정 논리를 잃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오히려 확대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건설사 정기평가 시즌이 도래하면서 신평사들의 부담도 커졌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등급을 내릴 경우 닥칠 후폭풍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건설사들마저 줄줄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얘기였다. 등급을 내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도 했다. 그는 신평사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었다.
신평사는 발행자의 신인도만 정확히 평가하면 된다. 시장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요구하지 않는다. 평정의 여파가 두려워 소신있는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면 등급 자체의 신뢰도가 추락한다. 신평사가 이런 식의 제 살 깎기를 지속하면 시장은 더 이상 신평사들의 평가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궁극에는 그 존재 의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신영복 씨는 '지남철'이라는 글에서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고 썼다. 또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떨림을 멈춘 바늘은 더 이상 지남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평사들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평사들은 고객과 수익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바늘 끝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평정 체계와 논리를 보다 날카롭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 역할과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둔해진 바늘 끝이 다시, 부단히 떨릴 수 있다.
임박한 건설사 정기평가는 신평사들의 지남철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를 가늠해 볼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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