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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현대重 '소유+경영' 재통합, 日 이마바리조선을 보라100년 전통 히가키 가문 조선업 '부활 뱃고동', 거침없는 M&A 추진

구태우 기자공개 2020-05-28 08:14:51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6일 13:4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3년 개봉한 '신세계'는 경찰이 범죄 조직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위장 경찰을 심기 위해 공작을 벌이는 영화다. 이 영화를 이른바 경찰 발 '지배구조 개편'으로 보면 어떨까.

경찰인 강과장(최민식)은 조직에 잠입한 이자성(이정재)을 활용해 후계구도를 흔들기 시작한다. 경찰이 관리하기 편한 인물을 최고경영자로 세워 조직의 경영권을 접수하려 든다. 하지만 경찰의 공작은 '프락치'였던 내부자가 반기를 들면서 물거품이 된다. 극중 이자성은 경찰로 복귀를 원했지만 임무가 계속 하달되면서 복귀가 요원해졌다.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 위장 경찰이던 이자성이 이사회에서 조직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미션'을 마치고 경찰 신분으로 돌아가기 보다 조직원으로 남았다. 경찰의 의도대로 조직의 공동대표가 됐으면 경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을 터다. 하지만 이자성은 '소유와 경영'을 통합함으로서 외부의 개입을 차단했다. 자신의 '공무원 신분'을 희생하면서다. 그렇게 해서 사정기관의 개입을 차단한 안정적인 지배구조 모델을 갖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 영화를 일반 기업의 사례로 빗대면 경찰은 행동주의 펀드에 가깝지 않을까. 외부에서 '오너십의 개편'을 시도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에서 외부로부터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가 자주 일어나는 경우는 오너십이 취약해질 때다. 이해관계가 있는 주주, 적대적 M&A 세력 등에 의해 주로 시도된다.

미국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개입과 한진그룹과 KCGI의 경영권 분쟁 등이 한 예다. 재무구조 악화로 경영권을 뺏긴 아시아나항공과 한진중공업 사례도 있다. 이들 사례를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유사점은 오너십이 취약할 때, 경영진의 오판으로 재무구조가 심각하게 악화될 때 오너십은 위기에 처하고 기업 역시 위기 국면에 내몰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통합된 회사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곱지 않다. 경영권이 2세에 이어 3세까지 승계된 경우 '부의 되물림'이라는 비판적 시선을 받는다. 이해관계자 또는 외부인의 '오너십 흔들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크지 않고 오히려 지지하는 세력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화진 서울대 교수는 "가장 성공적인 가족기업은 가족이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들은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있는 기업"이라며 "가족 경영기업은 외부 변화에는 느리게 반응하지만 가족 간 유대와 단합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사업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또는 통합, 어느 것 하나 완전무결한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이상적인 거버넌스 모델은 기업이 운영하는 업종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본집약적이고 성숙기를 맞은 조선업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보다 통합하는 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굵직한 경영 현안을 결정하고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을 통합하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도 32년 동안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한 이후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운영됐다. 하지만 3세인 정기선 부사장의 승계가 가시화됐고 '소유와 경영'의 재통합을 앞두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조선업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조선소는 가족경영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위기에 빠진 일본 조선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다.

◇日 최대 조선명가 '이마바리', 히가키 가문으로 똘똘뭉친 '오너십'

일본의 조선 및 해운 명가 기업인 이마바리(Imbari Shipbuilding) 그룹은 100년 째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히가키 가문으로 불린다. 현재 3세 경영 체제로 접어들었다. 창업주는 히가키 쇼이치, 2세는 현 회장인 히가키 토시유키다. 3세는 대표이사인 히가키 유키토다.
이마바리 조선의 3세 대표이사인 히가키 유키토.

'히가키'는 일본 남서부 지방에 위치한 에히메현을 대표하는 가문 중 하나다. 에히메현의 이마바리성에는 2대 회장이었던 히가키 토시유키 전 회장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지역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이마바리조선은 소유와 경영이 통합된 형태의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이다. 이마바리조선 일가는 100여명이 넘는다. 가족 구성원 중 많은 인원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무 이상 임원급 6명 중 5명이 히가키 가문의 일원이다. 이사회 구성원 중 '히가키' 성을 갖고 있는 구성원만 8명(20.4%)에 달한다. 방계까지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가족 구성원이 요직에 참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뿐이 아니다. 히가키 가문 일원은 계열회사는 물론 관계사까지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조선사로는 이례적으로 해운사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사와 해운사가 서로 사업적으로 '윈윈'하는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계열 회사 전반에 오너일가의 입김이 작용한다. 이로 인한 장점은 첫째도 둘째도 히가키 가문을 중심으로 구축된 확고한 '리더십'이다.


일례로 해운 계열사인 쇼에이 키센(Shoei Kisen)의 CEO는 이마바리조선의 CEO인 히가키 유키토다. 쇼에이 키센은 해외 선사와 장기용선계약을 체결하고 선박 발주는 이마바리조선에 넣고 있다.

이마바리 그룹은 조선업과 해운업을 동시에 하면서 상호 간 '윈윈' 체계를 구축했다. 이마바리조선의 과감한 M&A 이면에는 쇼에이 키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도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 2위 조선소인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JMU)와 통합을 추진 중이다. 2017년 초대형 선박을 위한 증설도 마쳤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조선해양의 사례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은 셈이다.

일본은 과거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실패로 끝나면서 경쟁력이 크게 위축됐다. 한국은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로 발전했는데, 일본의 조선업은 정체됐다. 일본 조선업의 '잃어버린 20년'을 이마바리조선이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조선업계는 이마바리조선의 강점 중 첫번째를 가족기업인 점을 꼽는다. 일본경제연구센터 관계자는 "이마바리조선은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설비를 확장할 때 '톱 다운'식으로 진행한다"며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M&A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산업만의 특징이 가족기업 지배구조에 의해 잘 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에는 설립 100년이 넘은 가족기업이 5만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 500위권 기업 중 가족기업은 3분의 1에 달한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할지 '소유와 경영'을 통합할지는 기업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

만약 이마바리조선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으면 어땠을까. JMU를 인수하려는 '통 큰 결단'은 실행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M&A에는 변수가 늘상 존재한다. 그리고 실적으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전문경영인은 가능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업의 소유주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경영을 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있어도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3세 '정기선 오너십' 회귀하는 이유

현대중공업그룹은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2002년 고문에서 물러나면서 공식 직함도 없어졌다. 현재까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그룹 전체가 '핍박'을 받았다. 이는 정 이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에 참여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너의 공백'을 김형벽·민계식·이재성·최길선 회장 등 '비오너 회장' 전문경영인이 메워 현대중공업그룹을 이끌었다.

현재 권오갑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재 지배구조는 '3세 정기선 부사장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일시적인 모델이다. 정 부사장은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으로 1982년 생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오너 가족'이 경영을 참여하지 않은 데는 정 부사장의 연령대가 낮았던 이유도 있다.

정 부사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고 유학길에 오른 후 2013년 재입사했다. 그는 경영 기획과 선박 영업 등 주요 업무를 맡았고 2018년 조선 부문 AS 등을 전문으로 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1월 AS와 솔루션 부문을 전문화하기 위해 출범한 회사다. 정 부사장이 처음으로 대표를 맡은 곳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 부사장의 승계를 천천히 준비해 왔다. 이미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사 전환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5.8%를 정 부사장에게 물려주거나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 한번 더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이 30여년 동안 지켜온 '소유와 경영' 분리 모델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 '중후장대' 산업은 오너 중심의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줄고 중국의 조선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른바 '큰손'들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해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이유다. 두 대그룹이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었던 데는 정기선 부사장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친분이 작용했다. 이슬람 국가와 같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의 경우 파트너십을 맺는 데는 전문경영인보다 가족기업이 유리하다는 평이다.

현재 일본과 중국의 조선소들은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과거 조선소 간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수주가 이뤄졌고 이는 조선소의 부실을 야기한 원인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배경에는 저가 수주도 있었다. 글로벌 1위 조선소가 2위 조선소를 인수하는 초대형 M&A에는 '오너십'이 필요하다.

정 이사장이 경영에서 완전 손을 뗄 당시 그룹 매출은 10조원에 달했다. 현재 그룹 매출은 50조원대에 달한다.

김화진 교수는 "회사 안팎의 사회적 자산이 가족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전문경영인은 이 자원을 배분하는데 취약하다"며 "가족기업들은 전방위적 역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경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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