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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마중물' KDBI의 역할

최익환 기자공개 2020-10-29 10:39:17

이 기사는 2020년 10월 28일 08:2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요즘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KDBI)를 활발한 플레이어로 꼽는 사람이 많다. KDBI는 지난해 7월 산업은행이 7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다.

첫 포트폴리오는 산업은행의 오래된 숙제인 대우건설이었다. 그동안 자체 자금으로 무한책임을 지며 장기간 기업지원에 나섰다면 이젠 KDBI가 실적개선을 이루고 매각을 마무리 짓는 ‘마중물’의 역할을 자처했다. 실제 설립 당시 산업은행이 밝힌 목적과도 다소 부합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이후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모습이다. 최근 KDBI는 현대중공업과 손잡고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뛰어들었다. 이미 MBK파트너스 등 다수의 민간 원매자들이 매물에 관심을 드러내던 터였다. 게다가 두산인프라코어는 모기업과 달리 정상기업이라는 점에서 구조조정 마중물로서의 명분은 미약하다.

산업은행의 관리 하에 있던 중형 조선사 한진중공업 역시 KDBI가 케이스톤파트너스와 손잡고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자들 역시 상당량의 드라이파우더(미소진자금)를 가진 곳들이거나 유력한 SI이지만 모회사를 통해 회사의 사정을 보다 잘 알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로 꼽히는 분위기다.

때문에 인수전에서 KDBI 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감이 원매자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문제는 KDBI의 존재만으로도 향후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시장 내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한진중공업 매각작업에 매도자의 자회사 KDBI가 유력 원매자로 부상하면서 ‘셀프매각’ 혹은 ‘약속대련’ 등의 용어로 평가절하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셀프매각의 전례를 남긴다면 향후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매물 인수에 진지한 관심을 가질 곳은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산업은행의 다른 주머니로 옮겨담는 요식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KDBI가 구조조정의 마중물이 될지 혹은 ‘찬물’이 될지는 산업은행의 매각작업 진행 방향성에 달렸다. 벌써부터 실사자료 제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산업은행이 인수금융까지 가져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마중물의 온도는 다소 낮아지는 모습이다.

한계기업에 대한 따뜻한 마중물의 역할을 산업은행과 KDBI에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 지금 이 시각에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빚을 갚지 못해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많지만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역시 설립배경으로 내세운 KDBI의 움직임은 전무하다. 모회사의 매물에만 관심을 가지며 마중물의 온도를 내릴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더 낮은 곳으로 파이프라인을 내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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