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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60년 히스토리]'롯데캐슬'로 새길 연 롯데건설, 재도약 열쇠는⑨2003년 이후 8위 수준서 변화 無…해외사업 확대, 상장여부 관건

고진영 기자공개 2021-10-08 07:50:19

[편집자주]

건설업계에선 해마다 시공능력을 줄세우는 성적표가 매겨진다. 항목별 점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업계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를 짐작해볼 수 있는 연례 이벤트와 다름없다. 특히 대형사들에게는 상징성 싸움이자 자존심 문제로도 의미가 있다. 도입 60년, 시공능력평가를 통해 시장의 판도 변천사를 되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06일 08:3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롯데건설이 10대 건설사로 완전히 자리잡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그 전에는 20위권 끝자리를 맴돌았으나 '롯데캐슬'을 내세워 재건축 주요 플레이어로 떠오르면서 위상이 달라졌다. 이후 20년 가까이 비슷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큰 도약도 없었던 셈이다.

이런 순위 정체에는 국내 주택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업구조가 한계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들어선 해외사업과 대형 복합개발 등 포트포트폴리오 확대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 차례 미뤄졌던 상장을 재개할지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평화건업' 인수와 롯데월드 건설

롯데건설의 전신은 1959년 세워진 ‘평화건업사’다. 평화건업사는 전후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는 동안 경부고속도로 등 굵직한 토목공사를 여러 건 수행하며 컸던 업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동 붐’이 일면서 대형 해외공사 수주여부에 따라 시평 순위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화건업 역시 시평 8위 수준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도로공사를 따내 해외 진출에 나섰는데 오히려 패착이 됐다. 현지사정 악화와 경험 부족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1978년 두 차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때마침 해외건설업체 인수를 검토 중이던 롯데에 정부가 평화건업 인수를 권유했다. 당시 롯데는 우진건설을 인수해 ‘롯데건설’을 출범하고 그룹 차원에서 중동시장 조사도 마친 상황이었다. 1978년 하반기에는 해외건설 조직도 갖췄지만 이듬해 평화건업을 인수하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롯데는 1979년 9월 15일 롯데건설을 평화건업에 흡수 합병시키고 사명을 롯데평화건설, 다시 롯데건설로 변경했다. 이미 시평 상위권이었던 평화건업과 합쳐지면서 롯데건설은 30위권을 단숨에 뚫었다. 1980년 시공능력평가에서는 22위에 랭크됐다.

하지만 평화건업 인수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해외사업은 얼마안가 벽에 부딪혔다. 1980년대 초반, 국내 경기회복과 인플레 둔화 추세가 뚜렷했던 반면 해외시장 여건은 날로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해외공사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1885년 해외사업부를 완전 해체해 국내 부서에 편입시켰다.

당시 국내 건설경기는 88년 서울올림픽 특수와 주택사업 활성화로 활황기였다. 1985년 기준 시평 22위였던 롯데건설은 부산지역을 대상으로 수주활동에 열을 올렸다. 수도권에서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올림픽 훼밀리아파트 등 대단위 프로젝트 공사를 잇달아 수주했다. 대형 그룹공사인 롯데호텔신관, 롯데월드도 성장의 발판이 됐다.

특히 롯데월드 건립은 그룹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된 프로젝트다. 롯데는 올림픽을 겨냥해 도심형 레저시설인 ‘롯데월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5년 3 월 사업계획, 이듬해 건축허가를 승인받았다. 1989년 7월에는 롯데월드가 테마파크 개관과 함께 완전한 모습을 갖춰 전관을 열었다.

덕분에 공사를 도맡은 롯데건설 역시 1990년 시평 9위까지 랭킹이 급상승했다. 그러나 이를 오래 지키지 못했으며 1995년 15위, 90년대 후반에는 19위까지 밀려났다. IMF 외환위기도 하락세를 부추겼다. 1998년 즈음 롯데건설은 400%가 넘는 부채비율과 아파트사업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롯데캐슬'로 재건축 '빅5' 우뚝

이때 부활의 불씨를 붙인 게 1999년 론칭된 ‘롯데캐슬’이다. 당시는 아파트에 마을이나 건설사 이름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고 브랜드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롯데건설이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롯데캐슬을 내놓으면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 출발점이 됐다.

경영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던 롯데건설은 한 시행사가 서초동 고급아파트 건축을 의뢰한 것을 계기로 '롯데캐슬' 브랜드를 고안해냈다. ‘성(城)’ 에 산다고 하는 이미지를 투영해 브랜드를 고급화했으며 덕분에 서울지역 재건축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20위권이었던 시평 순위에도 불구 2001년부터 재건축 수주로는 '빅5'로 손꼽혔다.

실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8년 동안 롯데건설이 공급한 전체 물량은 1만8000여 가구에 그쳤다. 그러나 롯데캐슬 론칭 이후인 1999년에서 2001년까지는 3년 물량만 따져도 1만9000여 가구다. 특히 2002년에는 연간 1만1000여 세대를 공급하는 등 주택사업의 외형이 급속도로 커졌다.

덕분에 시평순위도 2000년 17위에서 2001년 15위, 2002년 11위로 빠르게 점프했다. 2003년 8위로 순위가 뛴 뒤로는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나가지 않고 10대 건설사 위치를 수성 중이다.

다만 오랜기간 별다른 랭킹 상승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2010년 7위로 한 단계 오르긴했으나 2016년 다시 8위, 2017년 9위로 떨어진 이후 2018년부터 계속 십여년 전과 동일한 8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는 7위에 랭크되긴 했지만 DL이앤씨의 일시적 순위 하락을 감안하면 사실상 작년과 같은 위치다.


◇오랜 숙원, 해외사업과 IPO

정체 국면에서 롯데건설의 약점으로 해외사업이 지목된다. 실제 롯데건설 매출 가운데 해외영업 비중은 5%에 못 미치고 있다. 시평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형 건설사 중 HDC현대산업개발과 함께 해외 매출이 가장 적은 곳으로 꼽힌다.

실제 롯데건설은 해외에서 유난히 부침이 많았다. 한동안 멈춰섰던 해외사업을 1992년 롯데 사야마기숙사를 지으면서 일본에서 재개했더니 일본 건설시장이 장기불황에 빠졌다. 이후 2002년 러시아에서 다시 새길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크림반도 사태로 러시아 건설 시장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2005년에는 해외영업본부가 출범해 해외사업에 더 적극적 움직임을 보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다시 난관에 빠졌다. 다만 롯데그룹이 '남방정책'을 펼치면서 롯데건설도 그룹 기조에 따라 동남아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성장 축으로 삼은 해외 거점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인 투자개발형 사업을 추진했으며 2019년에는 주택 및 신도시 개발사업을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증시 입성 역시 투자실탄 유입을 통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꼽힌다. 롯데건설은 과거부터 수차례 상장 시도와 철회를 반복했는데 지금이야 말로 상장 적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건설업이 호황 사이클에 본격 진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건설사 중 롯데건설과 함께 비상장 빅5로 꼽히던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등이 모두 IPO를 준비 중인 만큼 시평 순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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