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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멜랑콜리

양도웅 기자공개 2022-12-06 07:31:32

이 기사는 2022년 12월 05일 07:57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입사 때부터 함께 한 우리 부장, 다음주에 퇴사야. 건강 문제라고 하는데 임원 승진에서 몇 번 미끄러졌거든. 이제 50대 초반인데···." 모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 녀석이 최근에 건넨 심경이다. 상실감이 묻어 있다. 친구가 중간 연차 정도의 과장이니, 못해도 10년은 동고동락한 선배다. 그런 선배의 뒷모습을 보는 감정이 어찌 착잡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은 기업이 수시 인사를 늘리면서 이제 조직과의 이별은 언제든 맞닥뜨리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은 여러 임직원에게 상실감을 안기는 계절이다. 떠나는 이도, 떠나는 보내는 이도 헤어짐에 따른 감정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별에 따른 감정이 슬픔이든 분노든 억울함이든 혹은 공포든 해소해야 한다. 인사 평가에 못마땅해 회사를 떠난 뒤 오래 몸담았던 조직에, 그리고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적개심을 안고 새로운 일에 집중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지 않은가.

'왜 떠나야 하는지' 못마땅한 사람은 꼭 당사자만도 아니다. 그래서 인사 이후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제 발로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계산기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바뀐 조직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를 떠나지 않더라도 불만을 한가득 안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점들은 매년 인사를 하는 기업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공정한 인사 평가를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인사 결과에 머리로 납득한다 해도 가슴이 수용하지 않아 일어나는 게 위와 같은 일들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1917년 '애도와 멜랑콜리'라는 논문에서 오랫동안 마음과 시간을 쏟은 대상과의 상실에 대해 말한다. 상실이라면 가족과 연인들의 이야기 같지만 회사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지는 상실 이후 충분히 애도해야 우울함의 일종인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대상에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인사를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고르라면 단연 '쇄신(reform)'이다. 좋은 결과를 낸 기업도 현상 유지를 원치 않는다. 따라서 인사의 목적인 기존과 다른 목표에 집중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회사를 떠나는 이에게도,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는 이에게도 애도할 시간을 줘야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애도가 슬픔의 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물리적 설명과 도덕적 해명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왜 그를 승진시켰는지(승진시키지 않았는지), 인사권자인 이사회와 경영진 본인들의 실책은 없는지 등에 대해 설명과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인사를 앞두고 있다. 어떤 기업은 우울증에 빠지겠지만 어떤 기업은 오히려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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