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05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기침체기에 통신사는 '공공의 적'이 되곤 한다.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통신 서비스의 효용을 느낄 일도 없는데 꼬박꼬박 얇아진 지갑을 털어가니 괜스레 미운 감정이 든다. 엄밀히 따지면 통신비 상당 부분은 스마트폰 기기 할부금에 해당하고 알뜰폰(MVNO)이라는 대안도 있으니 그다지 합리적인 발상은 아니지만 말이다.그런데 정부는 이 적대감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기름에 불을 붙인다. 대통령이 직접 금융과 통신 업계를 두고 '이권 카르텔'이라고 표현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들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정당할 뿐 아니라 정의롭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좋은 워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윗선에서 하달한 통신비 인하 미션에 목을 매고 있다. 이들 사업자의 5G 중간요금제 출시 소식을 보도자료로 배포하거나 직접 브리핑하며 정부의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달 말에는 알뜰폰 활성화, 신규 사업자 유치 등 내용을 담은 통신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통신비 깎아준다는데 마다할 국민이 있을까. 비싸다는 인식은 주관적이지만 통신비 인하는 정권 지지율에 확실히 보탬이 된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건 분명하다.
연장선에서 5G 통신 기술도 정권의 '제물'이 됐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신 3사가 과거 5G 서비스 속도를 거짓 과장 광고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5G 기술표준 속도인 20Gbps를 실제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문구를 쓴 걸 문제 삼았다. 공정위원장은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 중인 소비자에게 증거자료를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주요 매체도 맥락을 파악하기보다는 '온 국민이 속았다'는 등 자극적인 타이틀로 통신사 때리기를 거들었다.
물론 통신사들은 광고할 때 이론상 속도라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명시했기에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이미 '마녀사냥' 타깃이 돼 직접 반박은 못 하고 속앓이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모두 5G 28기가헤르츠(㎓) 기지국 구축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해당 주파수 대역을 회수당하게 됐다. 정부도 투자 대비 사업성이 떨어지는 걸 알고 있지만 '정책 실패'는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화살을 사업자에게 돌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통신사는 앞으로도 당분간 정권의 희생양이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통신 3사가 알뜰폰 자회사와 중소사업자를 차별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소비자 혜택 증대를 명분으로 '단통법'을 손보자는 얘기도 나온다.
이쯤 되면 통신사를 총선까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비단 주머니'로 여기는 게 아닐까. 물론 공짜는 없다. 통신사가 다시 마케팅 출혈 경쟁을 벌여 AI, 빅데이터 등 역량을 키울 적기를 놓친다면 국가 차원에서 소탐대실은 아닐지 생각해 봄 직하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우리금융지주, 운용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 택했다
- [CFO Change]엘앤에프, 투자자 저변 다변화 이끌 '류승헌 부사장'
- [기업집단 톺아보기]'지주회사' 동원산업, HMM 인수 자신감의 원천은
- 신세계百, '부사장급' 상품본부장에 상무 중용 '파격'
- [숨은 진주 SC제일은행]성장 원동력은 'SC' 브랜드 앞세운 '기업금융·WM'
- 진옥동의 싱크탱크…신한미래전략연구소장 교체
- [CFO 워치/우리은행]유도현 부행장, 자본비율 개선에 달린 기업금융 성패
-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워런 버핏
- [두산로보틱스 IPO]‘가격차’로 M&A 불발…상장후에도 추가조달 가능성
- [두산로보틱스 IPO]해외 확약비중 국내의 10분의1...반복되는 '역차별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