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1월 28일 09시1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바이오벤처 섹터는 한때 풍족한 유동성에 힘입어 호시절을 보냈다. 몇 년 전만 해도 바이오벤처를 창업하면 시리즈 투자를 받아 IPO에 나서는 걸 당연한 일로 여겼다. 이를 언론이든 주변 사람에게든 기쁘게 알리는 것도 일종의 미덕이었다.이제는 이조차 때와 상황을 가려야 할 처지가 됐다. 모 대학교 김 교수가 특정 신약개발 기술을 기반해 창업을 했고 어려운 시국에 초기 펀딩도 잘 받았다 가정해 보자. 예전만해도 약간의 부러움은 있었겠으나 대개는 축하가 먼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같은 다른 교수들로부터 VC 심사역에 전화해 '옆 연구실 김 교수한텐 돈을 꽂아줬는데 나한테는 왜'라는 볼멘소리가 먼저 들린다고. 과거와 달리 섹터로 유입되는 자금은 줄어들었는데 이를 받을 객체인 바이오벤처는 급증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바이오벤처는 늘었는데 이를 둘러싼 시장 환경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바이오벤처가 전면에 내세운 라이선싱을 통한 사업화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점은 지표로도 나타난다. 2023년 상반기 전 세계 톱20 빅파마들의 핵심 파이프라인 가운데 절반은 자체 개발했고 약 30%는 사들였(Acquisition)다. 라이선싱 즉 판권 계약 비중은 20%에 그친다.
이 길 하나를 두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바이오벤처가 경쟁하다보니 바이오벤처가 만족할 수준의 딜은 나오지 않게 된다. 최근 빅딜의 중심에 선 오름테라퓨틱의 사례를 보자.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이 ADC플롯폼과 타깃 단백질을 분해하는 최첨단 기술을 결합한 오름테라퓨틱의 파이프라인 ORM-6151을 1억8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양측 모두 해당 거래를 라이선싱이라 소개하지 않았다. 더불어 BMS는 오름테라퓨틱엔 반환의무가 없는 1억달러의 업프론트를 지급했다. 전체 거래 규모보다 업프론트가 큰 계약이 완성됐다. 통상 신약개발 파이프라인 L/O는 상업화 이후 로열티 등을 지급할 것을 고려해 업프론트보다 마일스톤이 큰 것과도 대조된다.
오름테라퓨틱의 사례는 최근 글로벌 L/O 환경이 얼마나 바이오벤처에게 비우호적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태동했거나 창업을 앞둔 국내 바이오벤처는 아직도 L/O에만 집중한 사업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오름테라퓨틱의 기술력은 국내 바이오벤처 중에서도 최첨단을 달린다는 평가다. 이는 오름테라퓨틱이 기술 개발을 위해 연간 수백억원을 R&D에 쏟아부었던 결과다. 그럼에도 오름테라퓨틱조차 최근 구매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의 난맥상을 넘지 못했다.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여전히 L/O 단 한 가지 전략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바이오벤처가 과연 있을까. 지금은 애초에 역설이었을지도 모르는 창업이나 사세 확장의 꿈을 잠시 미루고 눈높이를 맞출 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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