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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구·박병엽, '슈퍼 CEO'의 명암

문병선 기자공개 2011-12-21 10:19:18

이 기사는 2011년 12월 21일 10: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하이마트는 '선종구 사태'를 계기로 주요 3대 대주주들이 회사를 공개매각키로 하고 현재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선종구 사태'란 최대주주인 유진기업이 경영권을 행사하려는데 반대하고 하이마트 임원 및 지점장 350여명이 '선종구 옹립'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며 반발한 사건이다. 사태는 일단락됐으나 '선종구' 1인이 기업경영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팬택도 최고경영자(CEO) 1인의 움직임에 최근 크게 흔들렸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워크아웃 졸업에 대한 채권단 이견을 접하고 '사퇴'라는 강수를 써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박병엽이 아닌 다른 인물이 CEO였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지 모를 일이지만 영광의 워크아웃 졸업장을 받는데 그의 역할이 컸다는게 안팎의 분석이다.

연말 재계를 'CEO 이슈'로 뜨겁게 달군 두 기업의 사례는 CEO 1인이 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실감케 한다.

선종구 회장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박병엽 부회장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며 이슈가 된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두 인물 모두 그를 옹립하려는 임직원의 지지가 극단적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이마트는 회사 내에서 선회장을 "신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팬택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박병엽이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은 비교적 광범위하다.

전문경영인이 국내에서 이처럼 기업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던 사례는 과거에 많지 않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사례가 거의 없어 국내 다수의 기업 문화에서 경영진은 곧 오너인 경우가 다반사다. 재벌 중심의 기업 문화도 일단 최고경영진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반(反) 오너' 정서가 유난히 강하다. 선종구 대표와 박병엽 대표 두 인물은 오너가 아닌데도 전문경영인으로서 임직원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기업의 운명을 뒤바꿀 파워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슈퍼CEO'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슈퍼CEO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한 리더십을 갖추고 임직원의 맹목적 지지를 받는 슈퍼CEO는 해당 기업에 높은 경영 성과와 투자자 신뢰 같은 선물을 안겨주지만 장애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수년 전 발간한 '슈퍼CEO의 그늘'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그 부작용은 네가지 함정(성공의 함정, 후광효과의 함정, 카리스마의 함정, 마마보이의 함정)으로 압축된다. 하이마트와 팬택이 반드시 이런 부작용을 거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일단 CEO를 옹립하려는 임직원들의 전폭적 지지가 비교적 맹목적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강한 리더십과 높은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후광효과의 함정'은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비슷한 논리로 CEO와 기업경영간 상관관계를 밝힌다. 유명한 짐 콜린스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도 '좋은기업'과 '위대한기업'을 가르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CEO다. 500여개 이상의 기업들을 상대로 CEO와 경영성과간 연관관계를 추적한 끝에 '위대한 기업'의 리더는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아님을 지적한다.

변화, 혁신, 창조 등 빠르게 비전을 제시하고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주도자보다 수줍어하고 주목받지 못한 리더가 장기적으로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 빠른 변화보다 현재까지의 문화를 중시하고 비전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경영자가 '좋은 기업을 넘은 위대한 기업의 리더'였다고 짐 콜린스는 지적한다.

하이마트는 '선종구 사태'를 계기로 당장 'CEO리스크'가 M&A의 주요 변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쇼핑, GS리테일, 유진기업 등이 참여해 M&A 흥행을 거뒀던 과거와 달리 이번 매각은 의외로 고전할 수 있다. 선종구 대표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하이마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이마트를 인수하려는 새로운 기업들은 이 점을 인수리스크의 하나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M&A가 끝나면 선종구 대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텐데 선 대표 1인이 갖는 기업가치가 절대적이어서 새로운 인수측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 대표를 따라 유능한 임직원이 M&A 이후 회사를 그만둘 지도 모를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팬택도 비슷하다. 박병엽 1인에 의존한 시스템은 매각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 채권단은 기회가 오면 팬택의 보유 지분을 시장에 매각할 예정이지만 절대 1인에 의존한 팬택의 경영 시스템은 인수측의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다.

선 대표와 박 대표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슈퍼CEO들이다. 오너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하기 어려운 국내 기업 환경에서 이들의 성과는 분명 새로운 패턴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하이마트와 팬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시에 어떤 지속가능한 경영 시스템을 만들지, 그들이 없더라도 어떻게 기업이 이어질 수 있을지의 고민도 그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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