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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의 Prism]불안과 초저금리

이현중 기자공개 2014-10-31 10:20:00

이 기사는 2014년 08월 27일 13: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다가올 위험을 감지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 욕구다. 적당한 불안은 상념을 떨쳐내고 일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글쓰기가 좋은 예다. 디지털시대 글쓰기가 인기다. 글 잘 쓰는 비법을 전수하는 인기강좌부터 대통령 연설 비서관이 펴낸 책까지 사람들로 들끓는다. 좋은 글을 구성하는 다양한 조건 가운데 하나로 마감을 꼽고 싶다. 문예지에 소설을 연재하는 소설가, 매일 기사를 만들어야 하는 기자, 기안에 쫓기는 자유기고가 모두 다가오는 마감의 불안과 공포가 있기에 엉덩이 붙이고 자판을 두드린다.

따지고 보면 삶은 건강한 불안 때문에 지속된다. 존재의 근원을 고(苦)에서 찾는 불교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원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기독교 모두 하루하루의 삶은 행복보다는 불안이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超)저금리 시대다. 저금리와 그 앞에 '초'라는 글자가 붙은 단어의 정도 차이를 구별하는 기준을 하나의 숫자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실을 뛰어넘은 그 너머의 존재(초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존재(초인) 등 '초'의 다른 쓰임새를 미루어 보면 우리가 보아온 통념 수준을 넘는 정도의 낮은 금리를 뜻한다고 봐도 무리 없다.

돈 값인 금리의 높고 낮음은 한 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물가 등에 규정 받는다. 경제의 생산 가능한 능력이 낮아진다면 금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저금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 것도 성장률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그 시점은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무모한 덩치 키우기로 한껏 몸집을 키웠던 기업이 환란의 파고에 추풍낙엽같이 쓰러지면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됐다. 돈을 쓰는 기업이 사라지면서 기업이 일으킨 빚인 부채와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한 비율은 1997년 127%에서 2005년에는 86%로 뚝 떨어진다.

그럭저럭 돈 벌이되는 곳은 이제 쌓인 현금을 어떻게 굴릴지가 골칫거리다. 지난해말 기업이 금융자산으로 쌓은 규모는 1818조 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현금성 자산은 504조 원으로 3분의 1이 넘는 잉여 유동성을 돈 안되는 곳에 묻어 두고 있는 꼴이다.

'야성적 충동'에 필(feel) 받아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기업이 줄자 금융회사들은 눈을 가계로 돌렸고 이제 포화다. 외국인이 쥐락펴락하는 주식은 리스크가 커 채권위주로 돈을 굴릴 수밖에 없다. 리스크 자산의 위험비중을 높이는 규제도 채권 위주 자산운용을 부채질한다. 결과는 시중금리를 더 끌어내리고 예대마진은 더 좁아질 뿐이다.

개인도 현금을 움켜쥘 수밖에 없다. 노후를 대비해 연금과 보험으로 자산운용 규모를 키우고 있다. 개인 금융자산중 연금과 보험 비중은 2005년 22%에서 2013년 29%까지 늘어난다. 주가 흐름이 몇 년 째 지지부진한 것도 있지만 손실의 아픈 기억에 펀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2008년 144조 원대로 정점을 찍은 주식형 펀드 잔액은 44%나 줄어든 80조 원을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초저금리가 "현금을 들고 있어봐야 오히려 마이너스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위험자산 투자를 자극할 수도 있다. 순환적 불황 이후 호황을 기대한다면 남보다 한발 빠른 투자는 리스크를 진 만큼 성과로 보답한다. 하지만 1%대 예금금리는 가보지 않은 길이며 이미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비관론자의 엄살떨기로 비춰질 수 도 있지만 일본화(Japanization)나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단어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발등의 불이 된 듯하다. '저금리 저성장'의 디플레의 불안에 대한 헤지는 현금이 확실하다. 그래서 다들 삶을 갉아먹는 불안 앞에 현금을 묻어둔 금고의 문을 꽉 움켜쥐고 있는지 모르겠다. 초저금리는 영혼을 잠식하는 일상화된 불안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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