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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시장은 썩은 연못인가 [강종구의 Question]

강종구 기자공개 2015-05-06 09:40:00

이 기사는 2015년 04월 30일 17: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꾸라지는 생태계에서 모기 유충(장구벌레)을 먹음으로써 모기의 수를 줄이는 역할을 하며, 큰 물고기와 자라, 가물치, 물방개에게는 먹이가 된다. 미꾸라지는 지표동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미꾸라지가 살 수 있는 물은 3~4급수 정도 된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말은 먹이를 찾기 위해 유속이 적은 물 속의 바닥을 파헤쳐 흙탕물이 일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하지만 사실 미꾸라지는 물을 맑게하는 이로운 생물이다. 이 말은 어폐가 있다.(Wikipedia)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가 다음달 서울에서 미디어브리핑을 연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다는데, 아마 길어봐야 한 시간 남짓 걸리려나… 홍콩에 있는 크리스 박(Chris Park) 선임 애널리스트에게 이후 일정을 물어보니, 기관투자가 몇 곳을 방문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다. 무소불위의 평판 권력을 가진 무디스 아닌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전 세계 기업들이 평가를 해 달라고 줄을 설텐데. 게다가 크리스 박은 무디스를 대표하는 애널리스트로 국내 신용평가사 조직으로 따지면 본부장급이다. 그런 이가 이른 아침 미디어브리핑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자신들의 리서치 결과를 설명하러 다니는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하겠지만, 한국 신용평가업계의 상황을 잘 아는 필자의 눈으로는 정말 낯선 일이다. 어쩌다 국내 신용평가사 실장급이 큰 연기금이나 보험사에 방문설명을 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가뭄에 콩 나는 격이다. 심지어 요즘은 평가와 영업이 철저히 분리되면서 평가대상 기업조차도 거의 찾지 않는다. 하물며 평가수수료를 주는 기업에게도 그럴진대, 투자자 따위까지 신경쓰겠는가.

S&P나 무디스는 투자자가 부르면 그곳이 어디라도 달려간다. 철저히 투자자를 위해 서비스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쌓인 평판이 신용등급에 신뢰의 무게를 실어준다. 무디스의 정식 명칭은 'Moody's Investors Service', 투자자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그들의 정체성이다. 그들에겐 투자자가 제1의 고객인 것이다.

크리스 박은 최근 들어 투자자와 기업에 대한 서비스가 더욱 활발해 졌다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에 새로운 신용평가사가 많이 생기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디스와 피치 등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갖춘 빅(big)3 신용평가사들도 바짝 긴장해 있는 모양이다. 리서치와 방법론을 들고 시도 때도 없이 투자자를찾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자신들의 논리와 서비스로 투자자들을 감동시켜야,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무기를 늘 날카롭게 다듬는 것으로 시장과 호흡을 맞추고, 시장을 이끈다.

한국 신용평가업계는 어떤가. 종합 라이선스를 받은 세 곳이 약 1000억 원의 시장을 황금분할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300억 원의 매출을 매년 올린다. 열심히 해도 그 언저리고, 좀 느슨하게 해도 그 언저리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세 곳중 두 곳의 평가를 받아야 하니 평가대상기업으로 따지면 각각 3분의 2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셈이 된다. 3사의 과점(寡占, oligopoly)도 아니고 3자 독점(triple monopoly)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독과점시장에서 경쟁과 혁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변화는 오히려 독과점업자에게는 가능하면 피해야 할 위협이다. 신용평가시장을 취재한 십수년 간 단 한 해의 예외도 없이 '신용평가 선진화방안'이 나오다시피했지만, 진도가 나갈 리 없었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최선일테니까.

감독당국 역시 변화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용평가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는 것은 골치아픈 일이다. 1000억 원의 시장에 셋만 남겨놓고 튼튼히 울타리를 쳐 놓는 것이 관리하기도 편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올해 하반기 도입되는 독자신용등급제도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독자신용등급은 그저 신용등급을 매기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제도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도 없고, 감독당국이 주도해서 도입할 이유도 없다. 신용평가사가 방법론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고 싶다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독자신용등급을 공청회까지 열면서 도입하자고 했다가, 감독당국이 마음이 변해 하루 아침에 없던 일이 되고, 이제 여론에 밀려 다시 도입을 하는 우여곡절을 보면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국내 신용평가업이 발전하고 신용평가시장이 선진화되려면, 경쟁은 필수다. 당국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는 셋 만의 경쟁이 아니라 시장의 틀 안에서 새로운 논리와 기존의 논리의 도전과 응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것이 아니다. 열심히 논리를 개발하고 신용평가를 하다보니 투자자와 기업들에게서 평판을 얻게 됐고 그로 인해 국가공인 신용평가사(NRSRO)가 된 것이다.

우리 감독당국은 아예 새로운 신용평가사의 출현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인가를 받지 않고서는 신용평가업을 할 수 없고, 의뢰를 받지 않고서는 신용등급을 줄 수도 없다. 인가를 받기 위해 평판을 쌓을 기회도 주지 않는다. 경쟁의 모든 가능성을 막아 놓았으니 고인 연못이다. 미꾸라지가 살지 않으니 이미 썩었거나 썩을 연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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