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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의 운명, 순리에 따라야 [thebell note]

정호창 기자공개 2015-05-07 08:33:00

이 기사는 2015년 05월 05일 15: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제조업 벤처신화 1호'로 꼽히는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지난해 8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매각 작업을 세 차례나 진행했으나,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청산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팬택 임직원 1400여 명은 거리로 나서 '고용유지를 포기하겠다'며 회사를 살려달라 호소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청원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벤처신화'의 상징성을 감안해 정부가 나서 팬택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팬택을 살리는 게 과연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생존이 가능할지 등에 대해선 감성이 아닌 이성에 입각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팬택은 한때 LG전자를 밀어내고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 자리에까지 올랐던 기업이다. 하지만 낮은 수익성이 늘 문제였고, 유동성이 좋지 않아 법정관리 신청 전까지 두 차례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팬택이 시장 점유율을 2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가격 경쟁력'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보다 낮은 가격에 스마트폰을 판매해 시장 지위를 유지했다. 업력, 브랜드 파워, 마케팅비 등에서 모두 밀리는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쟁사보다 저가 전략을 펼쳤지만 반대로 제조원가 부담은 팬택이 가장 컸다. 삼성과 LG전자는 스마트폰 부품의 상당수를 계열사를 통해 공급받거나 자체 제작할 수 있지만, 팬택은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에서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탓에 적지 않은 출고량에도 늘 낮은 수익성에 허덕였고 결국 유동성 악화로 법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팬택이 벤처기업으로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성장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기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생존시켜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팬택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과 시장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싸구려 제품'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기술력에서도 경쟁자들을 앞선다고 보기 어렵다. 특허 등 1만 2500여 개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지만 세 차례 매각 불발이 의미하듯 시장가치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매각 자문을 맡았던 삼정KPMG조차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만약 팬택을 살리기로 결정한다면 향후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요될지 예상이 쉽지 않다. 당장 갚아야 할 채무액만 1조 원이 넘는다. 채권단이 채무 탕감이나 상환 유보 결정을 내린다 해도 제품 개발과 생산, 판매 등의 기업활동을 위해선 앞으로 수천억 원의 자금을 수혈해야만 한다. 이렇게 살린다 해도 시장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시장 강자에겐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 등에서 밀리고, 최근 떠오르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다.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거나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시장경제체제의 원칙이다. 한때 시장을 제패했던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 국내 벤처신화의 몰락을 바라보는 게 안타깝고 아쉽지만, 이제 팬택의 운명은 순리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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