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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에 낙하산을 펼치려면 [Credit View]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평가사업본부장공개 2015-09-07 07:30:00

[편집자주]

신용평가는 자본시장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단지 신용투자의 잣대에 그치지 않고, 산업/기업의 펀더멘털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늘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입니다. 더벨을 통해 마치 지각 아래 거대한 멘틀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다양한 크레딧 전문가의 뛰어난 직관을 감상해 보십시요.

이 기사는 2015년 09월 04일 10: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의 실패는 다양하다. 매출과 이익이 감소해도, 주가가 하락해도, 평판을 잃어도 실패다. 하지만 기업의 위기는 단 하나다. 자금이 부족한 것이다. 특정 시점에 자금이 부족해서 차입금을 갚지 못하거나 거래처에 매입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업의 실패가 쌓여 기업의 위기로 이어진다. 실패를 거듭하는 기업에게 자금을 계속 공급하는 투자자는 없다. 자금공급이 중단되면서 기업의 위기는 더 빨라지지만, 투자자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수준에 그친다.

문제는 기업이 승승장구하다가 돌연 대형 실패에 부딪혀 그대로 투자자들이 대응할 여유도 없이 위기에 빠져버리는 것이다(Peak & valley). 투자자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위기는 급격히 가속화된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 특정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산업에 걸쳐 폭 넓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의 피해는 글자 그대로 눈사태처럼 커진다. 요즘 보는 대형 신용위기와 금융위기가 모두 이런 양상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부주의한 성장(Reckless growth)'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고성장 국면이 장기간 이어질 때는 주의하자는 것이다. 매우 탁월한 통찰이지만 막상 현장에 적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고성장은, 무엇인가 거대한 혁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혁신에 따른 도약에 무조건 경계령을 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도약은 투자자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또는 금융회사)의 거품에 대한 대응은 대략 '처음부터 거품과 거리를 두는 경우', '거품에 동참하지만 조기에 정리하는 경우', '거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경우' 등 3가지로 정리된다.

시종일관 거품과 거리를 둔 투자자는 상처도 없지만 성장의 기회를 놓쳐 시장에서의 위상 하락을 겪는다. 정반대로 거품과 시종일관한 투자자는 엄청난 변동성을 겪고 종래는 큰 위기에 빠진다. 최고의 선택은 거품에 동참하여 성장의 기회를 누리고, 한걸음 빨리 빠져 나와 성과를 보전한(손실을 최소화한) 투자자다. 고성장과 고수익 그리고 시장지위의 상승까지 모든 것을 얻는다.

성공에는 신화가 뒤따른다. 경영자는 영웅이 되고 조직의 문화는 연구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다음 거품과 위기에서도 다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지난 위기 때 몰락한 대형 금융회사들(Bear Stearns, Lehman Brothers, Merrill Lynch, AIG 등) 모두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위기에서 영웅이었기에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음 거품에서도 최고의 순간에 낙하산을 펼칠 수 있을까? 지난 위기의 역사에서 성공했던 금융회사들의 특성은 어떤 것일까?

그 하나는 조직내의 소통이다. '잠수함의 토끼', '탄광 속 카나리아'로도 표현되는 현장의 문제 제기를 존중하고, 최고경영자가 이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정반대의 경우가 최고경영자의 판단착오와 고집으로 적절한 위기대응에 실패하는 것이다. 개별 회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활한 소통만큼 위기관리에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조직문화와 정책흐름은 외부에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투자자가 당면한 위기관리에 이를 참고하기는 어렵고, 대개 사후적인 설명요소에 그치고 만다.

반면 당국의 위기관리와 금융회사들의 대응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당국은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접시를 빼는 역할을 한다. 한참 흥이 올랐는데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취하지 않은 주최측의 판단은 존중하는 것이 좋다. 주최측이 접시를 뺄 때 손님들이 조용히 빠져나가면 전체적으로 탈이 없다. 하지만 손님들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떼를 쓰면 상황은 묘해진다. 바로 이때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 금융회사는 머지않아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성과를 보전해서도 그렇지만, 경쟁자들의 몰락으로 위기 이후 돌아오는 기회를 독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당국의 정책실패가 도마 위에 오르고, 심지어는 섣부른 위기대응으로 위기가 확대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당국의 위기관리 노력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한 사례가 훨씬 많다. 어느 쪽이든 당국이 시장의 반발을 무릅쓰고 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하는 것이라면 상황의 심각성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당국의 절박한 개입은 거품붕괴가 임박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다. 당국의 개입이 무력화되면 그 다음은 절벽이기 때문이다.

당국의 시선이 지배구조나 보상, 준법(Compliance) 등의 규범적인 이슈에 머물러 있다면 아직은 요령 껏 파티를 즐겨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시선이 특정 상품의 취급이나 레버리지 등 직접적인 영업활동과 직결된 이슈에 꽂혀 있다면 이제는 낙하산을 챙길 필요가 있다. 증권 파생상품 규제와 관련한 최근의 뜨거운 논란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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