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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지원해야 할까 [thebell note]

정호창 기자공개 2016-06-02 08:28:59

이 기사는 2016년 06월 01일 07: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조선업계의 부실 문제로 금융권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조선업 부실이 우리 경제와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과 채무관리에 나섰고, 최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주채권은행에 자구안을 제출했다.

문제는 자구안에 대한 양측의 눈높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채권단은 자구계획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고, 업체들은 추가 대책 마련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 자구안을 두고 채권단의 불만 목소리가 높다.

삼성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물론이고 금융당국과 정치권 인사들까지 나서 '대주주 책임론'을 거론하며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최대주주인 삼성전자나 그룹 최고경영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나서 유상증자 등의 지원 방안을 약속하라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실기업이 등장하고 그 처리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대주주 책임론'은 정서적으로 꽤 높은 설득력을 갖는 채권단의 무기다.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이나 금융사 고객의 돈을 투입해야 하니 회사를 잘못 경영한 대주주가 그간 얻은 이익을 토해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꽤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위기를 맞게 된 기업의 오너들이 '사재 출연'이라는 형태로 개인자산을 회사에 내놓았고, 어느덧 '관행'으로 정착됐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은 높은 정서적 설득력과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따지자면 자의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실 위법 소지가 적지않은 무리한 요구라 할 수 있다.

우리 상법은 '주식회사 주주의 책임은 그가 가진 주식의 인수가액을 한도로 한다(제331조)'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를 주주유한책임의 원칙이라고 한다. 회사 채권자에 대해 주주가 질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면 주주의 주권은 제한 또는 상실되고, 채권자는 회사 자산을 처분하거나 청산해 채권을 회수하거나 출자전환 등을 통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대주주가 방만하거나 무리한 경영을 펼쳐 회사가 도산하게 된 것이라면 그 책임은 '사재 출연'이 아니라 배임이나 배상 등 민·형사상 조치를 통해 묻는 것이 법과 제도에 맞는 방법이다.

삼성중공업은 유동성 위기가 예상되나 아직은 이자나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는 정상기업이다. 게다가 삼성중공업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방만경영 등 회사 내부의 문제보다는 시황 악화와 수주 감소 등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대주주라는 이유로 삼성전자에 유상증자 등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치 않을 뿐더러 여러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삼성전자 주주들의 손해가 뒤따르므로 배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 부회장이나 삼성 미래전략실의 결정으로 계열사들이 지원에 나서면 그간 우리 재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온 재벌그룹 오너의 전횡이나 독단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삼성중공업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은 이 부회장에게 사재 출연을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주식회사제도의 원칙을 무시한 과도한 요구일 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에게 우리 경제가 아직 관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 규정과 원칙이 통용되는 사회를 동경하면서도 막상 문제가 불거지면 여론재판과 정서법, 떼법 등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짙다. 선진 금융시스템과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갖고 싶다면 먼저 이런 구태부터 벗어던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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