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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권 승계 제도의 역습 [Kevin Park의 골프산업 스토리]

박경호 교수공개 2016-06-13 08:54:19

이 기사는 2016년 06월 10일 10: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원예탁금 반환이 최근에서야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첫 번째 고민은 1997년에 등장한다. 바로 IMF사태 직후다. 위기대응과 채권자 보호를 위하여 정부는 1997년12월13일,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하면서, ‘체육시설업의 승계'조항을 신설한다. 현재는 ‘회원권승계'로 알려져 있는 그 내용이다.

쉽게 말해 골프장 주인이 바뀌더라도 회원의 지위는 그대로 승계된다는 내용이다. 무슨 뜻일까? 골프장 사업주가 채무이행불능상태에 빠지더라도, 다음 주인에게서 돈을 받으면 된다는 뜻이다. 골프장을 인수하고 싶으면, 기존의 채무를 그대로 승계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법으로 규정했다.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이 조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골프장산업의 수익률이 채무를 감당할 만큼 높아야 한다. 그리고 회원권이 채무금액 이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서, 채권행사의 필요성이 적어야 한다. 즉 실질적인 채무인수부담이 적어야 한다.

1998년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업계는 회원권승계제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회원권은 안전하다'는 신화를 만들어 사방에서 회원을 모집했다. 즉 채무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회원제골프장의 수익률도 좋았다. 덕분에 회원제골프장개발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회원권거래시장에서도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거품은 기대를 형성하고, 기대를 따라온 투자 덕분에 기대는 충족되었다. 10년이 지난 2008년, 1억 원짜리 채권이 2억 5000만 원에 거래되는 상태에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예탁금 반환에 대한 두 번째 고민 역시 이 2008년에 이루어진다. 리먼브라더스의 부도로 시작된 금융 위기. 2008년4월 최고가를 기록했던 회원권 가격은 2008년 12월 말까지 40%가 폭락했다. 1억 원짜리 채권이 2억5000만 원에 거래되더니, 단 9개월만에 1억5000만 원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회원예탁금 반환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책으로 지불준비제도가 논의되었다. 예탁금의 일부를 미리 적립해 두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업계의 강력한 반발로 도입에 실패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위험이 알려지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원권가격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업계는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채무반환요구가 현실화 되었다. 2012년 이후 정상적인 골프장M&A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채무를 승계해 줄 사업자가 사라진 것이다. 2013년부터 채권자들의 법정관리신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6년 5월 대법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원권승계에 의한 채권자 보호는 신화에 불과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 회원제 골프장들이나 회원권거래소들은 회원권 거래의 위험성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을까? 회원권 승계 조항이 작동하지 않는 조건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정말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설마…' 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것으로 끝일까?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 회원제 골프장들은 ‘회원권 승계'라는 제도 뒤에 숨어 실질적인 회원 보호 조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익의 일부를 지불준비금으로 유보하지 않았다. 자본금을 확충하지도 않았고, 지급 보증도 없었고, 시설을 담보로 제공하지도 않았다. 제도적 준비에 반대로 일관했다. 그것으로 끝일까.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채무자들에 의한 법정관리 신청과 채무조정요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회원제 골프장 업계는 골프장경영자협회를 통해 세제 개편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로비 채널도 강력하고, 요구의 빈도도 매우 높다. 하지만 그럴싸한 논리가 없다.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회원제 골프장을 소유한 채무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보면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힘이 정의인 것은 아니다. 일이란 무릇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회원제골프장 업계에서 먼저 성의 있는 회원보호조치를 제시해야 한다. 최소한 누군가 그런 조치들에 관해 이야기하면 받아들이기는 해야 한다.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회원제골프장의 자본 건전성을 규제해야 한다. 자기자본 비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 따라 자본금을 확충하든지 예탁금 반환의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필요하면 기존 회원들의 출자 전환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회원 보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골프장 시설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고, 대주주나 모기업의 지급 보증도 받아들여야 한다. 향후 회원예탁금의 일부를 지불준비금으로 적립하겠다는 약속도 필요하다.

셋째,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통해 채무조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소유자나 경영진의 경영참여는 배제되어야 한다.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사법부의 이해 수준은 상당히 높다. 사법부가 현명한 문제 해결자로서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준 이상, 법정관리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조치들이 선행된다면, 정부도 회원제 골프장의 세제 개편을 진행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래야 대중제 전환을 위한 회원동의요건을 80%로 낮춰준 보람도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싫으면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사람을 우리는 일류라고 부른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미래를 위해서 외양간을 고치는 사람은 이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 소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회피하거나, 내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설마 또 다른 소가 도망가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우리는 삼류라고 부른다.

내 회원예탁금은 돌려 받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회원예탁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현재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7조4000억 원의 회원예탁금은 현재 15조8000억 원으로 줄었다. 줄어든 1조6000억 원 중 정말로 돌려받은 돈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동의해준 채권자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일단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일류가 아님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일까. 골프장 산업 구조가 정상적이라고 표현하려면 회원예탁금 규모는 10조 이하로 내려가야 될 것이다. 아직도 5조8000억 원 이상의 예탁금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소를 잃은 것이 아니다. 소는 이제 탈출을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해 이류인지 삼류인지는 앞으로의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다. 평가 받을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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