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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이 보여준 M&A 협상 기술

김일문 기자공개 2017-02-16 15:57:56

이 기사는 2017년 02월 10일 08: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식음료 회사들은 보수적이다.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사업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 제품이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니 어쩌면 뱃속까지 들어가야 하는 탓에 조심, 또 조심한다. 자연스럽게 기업 문화는 변화와 효율, 혁신 보다는 안정과 유지에 더 익숙하다.

M&A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식음료업체나 유통업체들의 협상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면 간혹 답답하리만큼 의사 결정에 신중함을 기울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탓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려는 심리일 것이다. 전쟁터와 같은 협상 테이블에서 때로는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때 결정을 못내리고 아쉽게 발걸음을 뒤로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끝난 동부익스프레스 M&A에서 동원그룹이 보여준 모습은 이 회사가 과연 식음료 기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특히 허술한 틈을 파고들어 협상의 우위를 점하는 기술은 M&A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뱅커들까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선 동원그룹은 동부익스프레스 인수 의향을 내비치면서 매각측과 한가지 약속을 했다. 가격 협상의 기준을 과거 현대백화점이 본입찰에서 제시했던 수준인 4700억 원에 맞춰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한차례 매각에 실패하면서 동부익스프레스의 매력도가 확 떨어진 상황에서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동원그룹에 곧바로 배타적 협상권한이 부여됐다.

동원그룹이 감추었던 발톱을 드러낸 것은 실사 과정에서였다. 동원그룹은 동부익스프레스의 자회사 동부인천항만의 최소수익보장(MRG) 계약을 문제 삼아 가격 인하를 요구한다. 사실 MRG는 이미 노출된 이슈였다. 동원그룹이 그 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실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MRG는 가격 인하 시도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동원그룹이 처음과 달리 태도를 돌변해 가격 몽니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은 매각측이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Non-Binding MOU)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만약 동원그룹의 마음이 변해 딜을 깨버리더라도 구속력이 없어 매각측으로서는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또 계약금 성격의 이행보증금도 없어 금전적인 보상도 받지 못한다.

이 때부터 상황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배타적 협상 자격을 얻어 실사를 통해 동부익스프레스의 회사 사정을 조목조목 들춰본 동원그룹이 협상 불가를 선언하며 떠나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두 번째 매각 실패라는 오명이 씌워진다면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팽팽했던 시소게임이 동원그룹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매각측의 선택지는 이 판을 깨느냐 아니면 동원그룹의 요구를 수용하느냐, 단 두 개 뿐이었다. 문제는 동부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가 매년 캡티브 물류 계약 물량 감소로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매각측은 더 나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깎아주더라도 나중 보다는 지금 파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동부익스프레스 M&A는 끝났지만 이번 거래를 지켜보면서 식품 회사 특유의 투박함 보다는 굉장히 전략적이고도 기민한 면모를 발휘한 동원그룹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얼마나 세련된 기술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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