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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노협 이대로 좋은가]정치권에 의존, 스스로 '외풍' 불러①회장선출 집안문제에 외부개입 빌미 제공

원충희 기자공개 2017-09-21 10:57:14

이 기사는 2017년 09월 14일 11: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14년 임영록 전 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내분으로 불거진 'KB사태'는 KB금융그룹에 많은 상흔을 남겼다. 고객 신뢰도와 임직원 사기가 하락했고 조직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외풍에 흔들리는 취약한 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구원투수로 나선 윤종규 회장의 최우선과제 역시 외풍이 스며들지 않을 지배구조 구축과 조직 추스르기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났어도 KB사태의 망령은 여전히 호시탐탐 등장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번에는 경영진이 아닌 노조가 불을 지폈다. 윤 회장 연임반대, 노동이사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정치권에 손을 벌렸다. 최근에는 수사당국 고발까지 강행했다. 집안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외풍을 불러들인 상황이다. 이는 KB금융이 다시 낙하산 투하장으로 전락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지배구조 개선에 쏟은 KB금융의 노력은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B금융그룹 계열사 노조로 구성된 KB노동조합협의회(KB노협)는 최근 3차례(7월 24일, 9월 5일, 9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을 압박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여지를 줬다는 점이다. 7월 24일, 9월 5일 회견에서는 김병욱·박용진·박찬대 등 여당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5일 기자회견의 경우 아예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했다.

노조가 투쟁수위를 높이기 위해 정치인과 연대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KB금융의 '외풍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우를 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하려는 KB노협의 계획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지지한 것은 정치권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한 형태라는 지적이다. 보통은 외풍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노조가 오히려 외부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만한 일이다.

국회 사진
*사진설명 : 9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KB노협 기자회견

KB노협은 지난 13일 사측이 직원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을 업무방해 및 부당노동행위로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앞서 12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노조가 실시한 윤 회장 연임 찬반설문조사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드러났다면서 검찰 고발을 운운했다.

사실 이 설문조사 자체가 윤 회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라는 시각이 많다. 시기도 미묘하다. 차기회장 선출을 위한 KB금융지주 '확대지배구조위원회(확대위)' 3차 회의가 바로 14일에 열린다. 앞서 후보군 23명을 7명으로 압축한 확대위는 이날 3인으로 줄인 숏리스트(Short List)를 확정, 이달 말 최종후보자 1명을 추천키로 했다.

KB금융 계열사 한 관계자는 "(설문조사는) 연임반대를 공식 선언한 근거로 직원들의 반대여론이 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라며 "결국 인기투표인 셈인데 이 결과를 토대로 회장 선임과정에 압력을 주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KB노협이 윤 회장을 경찰에 고발함에 따라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 역시 내부문제에 수사기관을 끌고 들어와 향후 정치권·정부당국이 개입할 빌미를 줬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주전산기 교체를 두고 벌어진 KB사태와 비슷한 전개다.

당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정병기 상임감사는 이사회에서 의결된 주전산기 구축업체 선정에 반대하며 임영록 전 회장, 사외이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시스템 교체를 결정한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직접 전달, 집안문제에 금융당국을 끌어들였다. 계기는 전산시스템이지만 본질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CEO들의 세력다툼이었다.

결과는 파국으로 끝났다.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을 비롯해 사외이사들이 전원 물갈이됐다. KB금융의 브랜드가치 훼손, 임직원 사기저하, 시장경쟁력 약화가 후유증으로 남겨졌다. '외풍에 취약한 KB금융'이란 멍에가 고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간 KB금융 CEO 자리가 정치적으로 내려지는 하사품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KB사태 이후에도 이런 인식이 사라지진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국민은행에 내려온다는 얘기가 돌았을 정도다. KB금융 고위관계자 중에는 이 소문이 대체로 사실이라고 귀뜸하는 이들도 있다. 여전히 정치권 낙하산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KB금융 노조의 행동을 불안하게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안문제에 정치권 등 외풍을 불러들이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자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세력에 개입여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행보라는 우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에도 KB금융이 자율·독립적인 경영자 선출을 보장받지 못한 채 외풍에 휘둘린다면 향후 정치권·정부당국에서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려 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며 "시계바늘이 KB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빌미를 노조가 제공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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