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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채용비리 논란]금감원의 유례 없는 검사…왜?④건전성·영업행위 관련성 적어, 제재근거도 미약…채용비리 사태 시작점

원충희 기자공개 2018-02-21 09:17:00

[편집자주]

은행 채용비리 사건이 법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업무방해죄로 불구속기소됐고 검찰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5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 의심사례를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한 입사 경쟁을 저해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은행이지만 입사규칙의 자율 제정 권한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옹호론이 만만치 않다. 채용비리 정국에 들어선 은행권에서 벌어지는 법적논란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8년 02월 14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불거진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을 계기로 전 은행권의 인사·채용시스템을 자체 점검해 보고토록 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걸쳐 검사에 들어갔다. 최근 하나·국민·대구·부산·광주은행 등에서 채용비리 의심사례 22건을 적발했다며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고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해당 5곳의 은행을 모두 압수수색했다. 특히 국민은행은 전 행장이었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실을, 하나은행은 함영주 은행장실을 수색해 각종 자료와 업무용 휴대폰 등을 압류했다. 최고경영자(CEO)가 채용비리에 연루돼 있는지를 집중 수사하기 위한 행보다.

이를 두고 전직 금융감독원 간부는 "종합검사 과정에서 직원 부당채용이 적발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채용이슈 하나로 은행을 검사해 검찰에 이첩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감독원 시절부터 은행에 대한 감독·검사업무를 해왔던 그의 말대로 이번 채용비리 검사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간 금감원의 감독·검사 포커스는 건전성과 영업행위였다. 금감원의 슬로건도 '금융은 튼튼하게 소비자는 행복하게'다. 조직구조 또한 재무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에 맞춰져 있다. 은행의 채용문제는 건전성, 영업행위 등과 큰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은행권 채용비리를 검사할 수 있는 법적근거 역시 딱히 규정돼 있지 않다.

다만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8월 금감원은 옛 외환은행을 대상으로 종합검사를 실사하던 중 부당채용 문제를 적발한 바 있다. 2008년 공개채용 과정에서 순위권에 한참 떨어진 후보의 자기소개서에 객관적 근거 없이 만점을 부여해 최종 합격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금감원은 포괄근담보 부당운용, 신용정보관리업무 부당취급 등을 종합해 외환은행에 과태료와 기관주의, 임직원 정직, 감봉 등의 제재를 가했다.

금융당국 출신의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당국은 인사·채용 프로세스가 금융회사 내부통제 업무에 대한 검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포괄적으로 접근, 해석하고 있다"며 "이번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도 내부통제 기능에 근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위원회법)'에 따라 △금융회사의 업무 및 재산상황에 대한 검사 △금융위원회법과 다른 법령에 따른 제재 △자료제출 및 관계자의 출석·진술 요구 △시정명령 및 징계요구 △임원의 해임권고 △영업정지 등의 권한이 부여됐다. 이 가운데 '금융회사의 업무 및 재산상황에 대한 검사'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인사·채용 프로세스도 포함된다는 의미다.

그렇다 할지라도 금감원이 채용문제를 내세워 금융사를 독자적으로 제재하기는 법적근거가 미약하다. 외환은행 사례도 엄밀히 말해 부당채용으로 제재를 가한 게 아니다. 앞선 관계자는 "금융사 채용비리는 금융법령 위반사항으로 볼 수 없고 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터라 금감원이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미약하다"며 "금감원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당국 내에서 CEO 해임권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올 정도로 강도가 세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받은 자는 금융사 임원(사외이사 포함)자격을 상실한다. 결국 관건은 검찰로 넘어간 채용비리 안건이 법원에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을 지다.

일단 국내에선 채용비리를 사기죄 및 뇌물죄로 처리한 사례가 없다. 채용비리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혐의를 증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현행법 안에서 채용비리는 업무방해죄를 주로 적용한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무방해는 혐의입증 정도에 따라 벌금형에서 집행유예 징역형까지 나올 수 있다.

무혐의로 나오거나 벌금형으로 끝난다면 CEO들의 임원자격은 유지될 수 있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게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지난해 3월 신상훈 우리은행 사외이사(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가 벌금 2000만원 판결을 받고 사외이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금감원이 은행권 채용문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시계바늘을 지난 2016년 10월로 돌이켜보자. 당시 금감원은 변호사 부당채용을 시작으로 인사비리 태풍을 맞았던 시기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감사원 감사에서 그간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졌다. 이는 임원 물갈이와 조직쇄신으로 이어졌다. 최근 KB금융지주, 하나은행 등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던 것과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사실 금융권 채용비리 사태의 시작은 우리은행이 아니라 금감원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다가 은행에서 제2금융권으로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용비리 사태의 이면에는 청년구직난과 고소득 직종으로 꼽히는 금융권의 인사·채용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정당한 연임절차를 밟고 선임된 CEO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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