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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블랙스톤과 힐튼호텔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8-10-29 08:15:08

이 기사는 2018년 10월 22일 10: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힐튼호텔은 2007년에 블랙스톤(The Blackstone Group)에 인수되었다. 부채 포함 260억 달러 딜이다. 이 딜로 블랙스톤은 세계 최대의 호텔 소유주가 되었다.

블랙스톤은 세계 최대의 대체투자회사다. 작년 말 기준 AUM이 4340억 달러다. 미국 상무부 장관과 리먼 브라더즈 회장을 역임한 피터슨(Peterson)과 역시 리먼 출신인 슈워츠만(Schwarzman)이 1985년에 단돈 10만 달러로 설립했다.

힐튼만큼 고객들을 헷갈리게 한 호텔 체인이 없을 것이다. 그 역사가 복잡하다.

힐튼은 1919년에 미드 '매드맨(Mad Men)'에 캐릭터로도 등장하는 콘래드 힐튼(Conrad Hilton)이 텍사스에서 룸 40개 짜리 호텔을 사들이면서 시작되었다. 1927년에는 에어컨이 달린 첫 호텔을 열었고 1943년에는 뉴욕의 루즈벨트호텔과 플라자호텔을 매입하게 된다. 1946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했고(Hilton Hotels Corporation) IPO를 했다.

1949년에 푸에르토리코에 호텔을 열면서 힐튼인터내셔널(Hilton International)이 출범했다. 같은 해 뉴욕의 아스토리아호텔(Waldorf Astoria)도 사들였다. 1959년에 샌프란시스코공항에 호텔을 열어 공항호텔 컨셉을 개척했다. 1979년에 창업자 콘래드 힐튼이 91세로 타계하자 창업자를 기리기 위해 콘래드호텔 브랜드를 새로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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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의 소유구조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1964년이다. 국제사업이 분리되어서 독립된 영국의 상장회사(Hilton International Company)가 되었다. 이 회사는 곧 힐튼의 손을 떠나게 된다. 1967년에 TWA항공이 인수했다가 1986년에는 유나이티드항공이 넘겨받았다. 1987년에는 영국의 레저/도박회사 래드브로크(Ladbroke Group)에 매각된다.

그런데 이 회사는 1999년에 이름을 힐튼그룹(Hilton Group)으로 바꾸어버렸다. 그 결과 힐튼이라는 이름을 가진 완전히 별개인 두 회사가 존재하게 되었고 두 회사 다 호텔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힐튼인터내셔날은 미국 안에서도 호텔사업을 했는데 비스타(Vista)라는 이름을 썼다. 미국의 힐튼호텔은 미국 밖에서는 콘래드호텔로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소비자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두 회사는 로고를 공유하고 상호 협조하며 공동으로 예약을 받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비스타는 쇠락했고 콘래드는 아스토리아와 함께 독자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2006년에 힐튼은 힐튼인터내셔널을 인수해서 객실 수 기준으로 세계 5위의 호텔체인이 되었다.

블랙스톤이 힐튼을 인수했을 때 힐튼은 200억 달러 부채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힐튼의 채무는 내용이 상당히 관대해서 호텔이 바로 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금융위기로 여행객이 줄자 사업은 타격을 받았다. 2010년에 채무조정이 이루어졌다. 블랙스톤이 8억 달러 증자를 했고 채무가 160억 달러로 낮아졌다.

블랙스톤의 힐튼 인수는 성공작이다. 객실 수가 두 배로 늘어났고 힐튼은 2013년 12월에 두 번째 IPO를 했다. 블랙스톤은 140억 달러의 이익을 시현했다. 2018년 기준 힐튼은 세계 1위의 호텔 브랜드다. 매리어트, 하얏트, 홀리데이인이 그 뒤를 따른다. 100개국에서 약 5300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힐튼을 인수한 2007년에 블랙스톤은 IPO를 했다. 피터슨은 IPO로 18억 5천만 달러를 벌었고 이 금액의 99.999%가 자본이득이라서 막대한 세금을 냈다. 역설적으로 이 단계에서 피터슨은 이렇다 하게 돈 쓸 데가 없었다고 한다. 고작 테라스가 딸린 아파트로 이사할 것인지를 놓고 부인과 옥신각신 했다고 회고록에 나온다. 결국 피터슨은 그 돈의 절반으로 피터슨재단을 설립해서 여러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을 지원했다.

올해 3월에 타계한 피터슨의 은퇴 후부터 슈워츠만이 미국 자본시장의 지존(King of Capital)이었다. 전 세계 사모펀드 전문가들이 선망하는 모델이다. 슈워츠만은 예일대학교와 하버드대 경영대를 나왔다. 뉴욕시립도서관에 1억 달러, 모교 예일대에 1억 5천만 달러 식으로 통 큰 기부를 하기도 한다. 60세 생일파티에 로드 스튜어트를 초청해서 30분 공연에 백만 달러를 지불한 일화도 있다. 이 파티에는 트럼프와 블룸버그도 손님이었다.

그러나 블랙스톤의 출발은 가시밭길이었다. 펀드를 모으기 위해 처음 약 2년을 빈손으로 고전했다. 문자 그대로 수입이 없었다는 뜻이다. 연기금 사무실에서 신입사원의 면담을 받는가 하면 어떤 보험회사의 리셉션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1시간씩 대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두 파트너는 비오는 날 택시를 잡기 위해 길에서 45분을 우왕좌왕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피터슨의 회고록에 나온다.

리먼 회장을 지낸 사람이 그간 쌓아둔 인맥도 있었을 텐데 무려 2년을 그런 식으로 푸대접을 받으면서 보냈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역시 미국은 미국이고 자본시장은 자본시장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읽는 미래의 사모펀드 사업가들은 이들조차 그런 시기를 거쳤다는 데서 위안을 삼기 바란다. ‘남의 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 않은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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