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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확신'에만 투자한다, 김탁 유진운용 이사 [매니저 프로파일]프롭 9년 누적 250% 수익률 '신화' 주인공...철저한 탐방, 끊임없는 연구 '핵심'

김수정 기자공개 2020-03-18 13:31:04

이 기사는 2020년 03월 16일 07:5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탁 유진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팀장(사진)은 대형 성장주 위주의 에쿼티 롱숏 전략만 15년째 고수하고 있는 자타공인 '주식쟁이'다. 은행 프롭 데스크에서 운용업무를 시작해 펀드매니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기업은행 자금운용부에서 9년 간 누적 250% 수익을 냈고 고전하던 교보악사자산운용 1호 헤지펀드를 시장 5위권 대형 펀드로 탈바꿈시켰다.

정해진 법칙이나 시장 대세를 따라가지 않고 오로지 본인 확신에 근거해 투자해왔다. 강력한 확신을 갖기까지 끝없이 공부하고 고민한 이후에야 종목 하나하나를 포지셔닝한다. 이같은 '확신 투자'는 철저히 탐방 기반으로 이뤄진다. 직접 보고 느끼지 않은 어떤 주식에도 투자하지 않는다.

◇성장스토리: 20살 새내기, 주식 동아리 결성

김 이사는 1977년생 서울 토박이다. 농구를 좋아하고 적당히 리더십 있는 평범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가 주식과 연을 맺은 건 대학 입학 이후다. 1996년 서강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그는 친한 선배들과 주식 분석 동아리를 만들었다. 인터넷도 변변치 않던 시절 이들은 경제신문을 보면서 종목을 하나하나 찾아 기업가치를 분석하고 지금 주가가 적정 수준인지 토론했다.


직접 기업을 찾아가기도 했다. 지금의 기업 탐방 개념이다. 당시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도 기업 탐방은 흔치 않았다. 지금은 포털 검색만으로 기업 전화번호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당시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졸업생을 포함해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방문했다. 20살 갓 넘은 청년들의 탐방 대상이 된 기업 입장에선 깜짝 놀랄 일이었다.

직접 매매까지 시작한 건 군 입대 이후다. 그의 남다른 주식 분석 취미가 소문 나면서 하사관과 장교들이 대신 투자해 달라며 자금을 맡겼다. 그 입장에선 부담이었지만 한편으론 덕분에 인터넷을 사용하고 경제신문을 볼 수 있는 특혜도 누릴 수 있었다. 제대 이후에도 그는 가까운 지인들을 대상으로 펀딩해 크고 작은 투자를 이어갔다.

그 무렵 김 이사는 '솔론'이라는 사이트를 무대 삼아 사이버 애널리스트 활동도 했다. 솔론은 당시 꽤 영향력 있던 주식 정보 사이트다. 고수가 추천 종목과 목표가를 제시하면 일반 회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구독하는 공간이었다. 클릭수가 늘어날수록 콘텐츠 게시자의 등급이 올라가고 그가 등록한 콘텐츠의 건당 구독료도 점점 높아지는 구조였다.

김 이사의 콘텐츠 구독료는 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1만원을 찍었다. 대학 3학년생으로서 꽤 쏠쏠한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곧 회의감이 찾아왔다. 언제부턴가 돈을 벌기 위해 제대로 분석을 안 한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제에 국내 주식시장도 미국 911 테러와 LG발 카드 사태 등으로 힘겹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러 여건이 맞물리면서 김 이사는 자연스럽게 주식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을 첫 직장으로 택한 것도 주식에 질려서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서 인턴 활동도 해봤지만 주식 하는 직업을 갖고 싶지 않았다. 졸업을 1년 앞두고 김 이사는 당시 기업은행에 다니던 선배를 통해 특별채용에 지원했다. 그리고 같은 해 4학년 2학기 시작과 함께 입사 합격 통보를 받았다.


◇트랙레코드1: 은행에서 다시 만난 주식…9년 누적 250% 수익률 '신화'

2003년 기업은행에 입사한 김 이사는 2년 간 지점에서 근무한 뒤 자금운용부에 발령 났다. 처음 그가 맡았던 업무는 외환 거래였다. 하지만 외환 딜링을 단 하루 경험한 그는 곧바로 상사에 달려가 "지점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펀더멘털이 아닌 수급을 따라 움직이는 외환 거래는 따분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못 하겠다는 그에게 당시 자금운용부장은 "외환이 싫으면 주식을 하라"고 했다.

주식도 탐탁지 않았지만 외환보단 낫다고 생각하고 딱 6개월만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김 이사는 2005년 초 'PU(Proprietary Unit) 013'과 함께 프롭 트레이더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일반 행원이 PU를 배정 받은 건 김 이사가 유일하다. 통상 과장급 이상 돼야 최소한의 액수로 유닛이 할당된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의 남다른 경력 덕분에 본의 아니게 '특별대우'를 받았다.

마지못해 떠맡은 주식 운용이었지만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가로서 2년6개월 만에 재회한 주식은 다시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김 이사는 PU 배정 첫 해 100%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코스피200 성과를 47%포인트 아웃퍼폼했다. 최소액인 300억원으로 출발한 PU 013은 이듬해 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가 프롭 데스크에서 보낸 시간만 9년이다. 2009년 과장 승진 직후 지점으로 의무 발령 나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프롭 데스크에서 '돈 벌 사람이 없다'며 그를 불러들였다. 당시 자금운용부서장은 김 이사를 복귀시키기 위해 인사부장을 5번이나 찾아 갔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김 이사는 거대 조직의 명확하고 예외 없는 인사 기준을 거스른 전례 없는 캐릭터가 됐다. 타 부서에서 원성과 이의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복귀 직후 보란 듯 수익을 내는 그를 보면서 엄청났던 뒷말은 쏙 들어갔다. 2010년 김 이사의 수익률은 24%로 벤치마크를 넘어섰다. 김 이사의 표현대로 '성과를 못 냈으면 역적이 될 뻔'했던 상황이다.

김 이사가 프롭 데스크에서 활약하며 기록한 누적 수익률은 245%에 달한다. 추적오차도 변동성도 컸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을 200% 이상 웃돌았다. 수많은 투자 건 가운데 특히 삼성전자를 100% 담은 포트폴리오로만 40% 넘게 수익을 낸 사례는 여전히 회자된다. 2011년 중순 삼성전자 주가는 지금 액면가 기준 1만3000원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급격히 반등해 그 해 말 2만원대 초반에 이르렀다. 이 같은 주가 급등세를 보면 보통 사람은 경계심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 이사는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확신했다.

이듬해 그는 PU를 통째로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윗선의 강경한 저항에 부딪쳤지만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3차례 PT를 진행해 왜 이런 포트폴리오를 짰는지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결국 결재를 받았다. 물론 '잘못되면 나갈 각오 하라'는 전제가 붙었다. 결과적으로 그 해 1년 간 삼성전자 주가는 43.8% 올랐다. 이 해 김 이사의 PU 수익률은 63%를 기록했다. 그가 "프롭에서 포트폴리오를 멋있게 짜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이 건으로 그는 은행장 표창을 받았다.

◇트랙레코드2: 교보악사 헤지펀드 '환골탈태' 주역

2014년 김 이사는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인 안효준 당시 교보악사자산운용 대표를 만나면서 일대 변화를 맞았다. 안 CIO가 직접 그를 만나러 와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김 이사는 안 CIO의 주식에 대한 애정과 철학에 공감해 이직을 결심했다. 그 해 4월 교보악사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로 첫발을 내디뎠다.

김 이사는 교보악사자산운용의 1호 헤지펀드인 '교보악사매그넘1전문사모투자신탁' 운용을 맡았다. 2013년 연간 수익률이 목표치의 절반 수준인 4.2%에 그쳤던 이 펀드는 김 이사가 운용 키를 잡은 2014년 연간 수익률이 7.6%로 뛰어올랐다. 이후 낮은 변동성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기관 자금을 쓸어 담았다. 김 이사가 운용을 맡기 전 200억원에 불과했던 운용규모가 4년 만에 2000억원에 육박하면서 당시 기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펀드로 성장했다.

2016년 4월 헤지펀드운용팀장이 된 그는 같은 해 7월 신규 헤지펀드 '교보악사ORANGE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을 론칭했다. 그가 효율적인 기업 탐방을 위한 원칙을 일반화해 정리한 'ORANGE'(Outlook·Rivalry·Aspect·Newly·Guidance·Event)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익률 관리에 실패한 1세대 헤지펀드들의 펀드 청산과 사업 철수가 잇따르던 시기 교보악사자산운용은 오히려 외연을 넓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김 이사는 2018년 초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교보악사자산운용 역대 최연소 이사가 됐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 해 교보악사매그넘1과 교보악사ORANGE은 수익률이 나란히 -6%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스피가 17.3% 급락한 해다. 김 이사가 롱숏 포지션을 설정했던 종목들의 방향성이 예상을 빗나가면서 펀드 수익률이 악화됐다.

회사 차원에서 운용전략에 급격한 변화를 준 것이 수익률 악화에 일부 영향을 줬다는 얘기도 나왔다.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김 이사의 관할 업무가 늘어났고 이전까지 그가 쥐고 있던 투자 결정권은 팀원들에게 섹터별로 배분됐다. 회사 입장에선 '원 맨' 리스크를 해소하고 후임을 양성하는 등 헤지펀드 사업을 안정화하기 위해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시행착오였다. 수익률이 부진해지자 자금도 빠르게 빠져나갔고 교보악사자산운용 내부적으로 에쿼티 롱숏에 대한 회의론이 번졌다.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김 이사에게 유진자산운용이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유진자산운용은 야심차게 헤지펀드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 이사가 유진자산운용으로 적을 옮기기로 결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좋아하는 주식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는 유진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팀장으로서 펀드매니저 인생 2막을 열었다.

김 이사는 이직 4개월여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진모데라토large cap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과 '유진아다지오멀티스트레티지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등 헤지펀드 2종을 론칭했다. 유진모데라토large cap은 김 이사가 프롭데스크에서 활용하던 공격적인 전략을 적용한 에쿼티 롱숏 펀드다. 유진아다지오는 교보악사자산운용 시절 운용했던 펀드들과 동일한 전략을 구사한다.


◇투자스타일 및 철학: 대형 성장주 선호...철저한 탐방 기반 '확신 투자'

펀드매니저로서 현재 그의 핵심 전략은 대형주 위주의 펀더멘털 롱숏이다. 펀더멘털 자체가 아니라 펀더멘털 방향성을 보고 성장주를 가려낸다. 펀더멘털 방향성 예측에 있어 그는 중장기 전략을 파악하고 그 전략이 향후 시장에서 얼마나 통할지 등을 입체적으로 고민한다. 기업을 '살아 있는 생물체'로 보고 이 생물체가 어떻게 진화할지 전망한다. 이 것만 잘 읽어도 절반은 수익을 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정한 규칙과 시장 흐름을 따르지 않고 본인 확신에 의존해 투자 판단을 내린다. 확신이 설 때까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한다. 이 과정에 직접적인 경험을 중시한다.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는 건 애널리스트가 할 일"이라며 직접 기업과 스킨십 하고 본인 경험에 비춰 판단한다. 많을 땐 하루 평균 2~3곳 꼴로 기업 탐방을 다녔다. 지금도 월 20회 안팎 탐방을 진행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펀드매니저 구두 뒷굽을 보면 그의 수익률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탐방과 분석으로 습득한 이론적인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경험이 확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펀드매니저라면 여행도 많이 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확신과 유연한 사고 간 균형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니저가 본인의 중심 시각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 흐름의 변화를 등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절대수익의 핵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확신과 유연함 사이에서 항상 줄다리기를 하면서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아야 잃지 않는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운용자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프롭 트레이더나 펀드 매니저나 개인투자자와 달리 운용에 있어 간섭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항상 스스로의 투자 결정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나만 알고 있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업계 평가: 오직 주식 '한우물'..."에너지 가득" "타고난 발표자"

김 이사의 지인들은 그를 '주식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주식 외 다른 것에 큰 관심이 없다. 한 펀드매니저는 그에 대해 "증시가 어려운 상황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주식만 운용해온 흔치 않은 매니저"라며 "시장에 남아 있는 많은 펀드매니저 가운데 주식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휴가나 주말 시간마저 일부 주식에 할애할 정도로 주식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과거 김 이사와 함께 근무했던 업계 관계자는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진 완전히 머리를 비우고 휴식하지만 일요일 오후부턴 회사에 나와 다음주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과거 김 이사 밑에서 근무했던 그의 후배는 "그가 한번 영국으로 휴가를 갔던 적이 있었는데 휴가 중임에도 현지시간으로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가 열리는 한국 증시를 거의 매일 체크하면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또한 김 이사를 두고 '컨빅션(Conviction) 투자의 창시자'라고 했다. 그는 "프롭 시절 김 이사가 남들과 다른 투자 방식을 10년 가까이 고수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투자 판단과 철학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주식에 대해 열정을 갖고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그처럼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 눈에 그는 항상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펀드매니저의 주요 자질로 강조하는 그답게 타고난 발표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오가면서 몇 번 그가 PT를 진행하는 걸 봤다"며 "듣는 사람 눈높이에 맞게 자유자재로 발표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향후 계획: 자체 종목선정 기준 만들기 '목표'…평생 주식운용 '꿈'

주식 절대수익 운용만 15년 가량 했다. 김 이사는 앞으로 15년은 더 주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식 매매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간을 최장 30년으로 본다면 이제 절반 정도 지난 셈이다.

가장 존경하는 금융인을 물으면 그는 한치 망설임 없이 안효준 국민연금 CIO를 꼽는다. 김 이사를 펀드 매니저의 길로 인도한 사람이자 본받고 싶은 선배다. 함께 일하던 당시 안 본부장은 주로 결과에 대해서만 논하는 보통의 상사와 달리 대응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끌어안겠다는 태도다. 김 이사는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투자철학은 윌리엄 오닐의 저서 'CANSLIM'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한글 번역본 제목은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이다. CANSLIM은 △Current Earnings per Share △Annual Earnings per Share △New △Shares Outstanding △Leader or Laggard △Iinstitutional Sponsorship △Market 등 7개 키워드의 머릿글자다. 상승세를 탈 종목을 선별하는 방법이 이 7개 키워드에 압축돼 있다.

프롭 데스크 시절 이 책을 읽은 그는 "종목 하나하나를 발굴하는 과정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가 탐방 가이드라인 ORANGE를 만든 것도 CANSLIM 영향이다. 장기적으로는 그 역시 윌리엄 오닐처럼 자신만의 종목 선정 기준을 일반화해 정리하는 게 목표다.

휴식할 땐 지인들과 만나 술자리를 갖는 것을 즐긴다.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한다. 쉴 때는 가급적 머리를 비우려고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 있어선 예외다. 긴장한 채 상대방과 나의 전력을 맞춰가는 과정을 두고 '재미있는 고민'이라고 그는 말한다. 재테크는 따로 하지 않는다. 부동산에도 관심이 없다. 굳이 꼽자면 일을 잘 해서 연봉을 올리는 게 재테크라고 생각한다. 혹은 본인이 운용하는 펀드에 투자할 생각이다.

지금으로서 1순위 과제는 유진자산운용의 신규 헤지펀드들을 잘 운용해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30년 주식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혼신의 힘을 다 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펀드들이 자리잡은 이후에는 글로벌 주식 롱숏까지 손을 뻗을 계획이다. 해외 주식 펀드를 만들기 위해 그는 2년 넘게 꾸준히 자료를 수집하고 업데이트하면서 시뮬레이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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