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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의전'을 줄일 수 있을까 [thebell note]

이은솔 기자공개 2020-06-05 09:55:37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4일 07: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대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사람의 기분을 간파해 내는 한국식 예술." 삼성 출입 외신기자였던 제프리 케인은 최근 출간한 책 '삼성의 부상(Samsung Rising)'에서 '눈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삼성에서는 이렇게 모호하고 간결한 표현으로도 의사소통이 이뤄진다고 봤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뭐든 척척 일처리가 이뤄지는 곳으로는 은행을 빼놓을 수 없다.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목격하는 은행장이나 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의전은 톱스타 저리가라다. 도착 몇시간 전부터 직원들이 미리 와서 동선을 체크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장 차림으로 문앞에서 대기한다.

의전이 모두 허례허식은 아니다. 올해초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 등장했을 때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의 출근저지로 당시 화제였던 윤 행장에게 "한말씀 해주세요"를 외치기 위해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옆에서 온몸을 던져 보호하던 직원들이 없었다면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의전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은행장 중 '내게 더 깍듯이 해달라'고 직접 요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다수 직원들은 상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분에 맞춰 격식을 차린다. 받는 사람은 점점 익숙해지고 그럴수록 직원들은 더욱 의전에 신경쓰는 상황이 반복된다.

윤 행장은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임원들을 모아두고 "의전을 줄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기업은행이 다른 기관이나 민간회사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격식이 많다고 콕 집어 지적했다. 본인이 솔선수범하겠지만 본부장, 영업점장들도 협조해달라고 했다.

윤 행장의 발언이 의미있는 이유는 그동안 눈치껏 굴러오던 의전 문화를 정면 지적했다는 데 있다. 행장 뿐 아니라 부행장, 임원, 부서장 등 알게 모르게 의전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은 뜨끔할만한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행장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래 임원들도 앞으로는 과도한 의전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과도한 의전을 줄여야 기업은행이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취임 초기부터 강조한 '혁신경영'의 주요 내용으로 꼽은만큼 으레 하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게 기업은행 내부의 전언이다. 을지로3가에서 수행원 없이 백팩을 메고 걷는 행장님을 마주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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