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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족제비 잔혹사 thebell note

최은수 기자공개 2020-08-25 08:13:31

이 기사는 2020년 08월 24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린 수십만명의 목숨을 구한 암 치료제를 출시했어. 그 과정에서 실험용 쥐 25만 마리가 죽었지. 하지만 난 걔들한테 허락 따위 구하지 않았어.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올드 가드'의 한 장면. 작중 '불멸의 존재'인 주인공들을 노린 '메릭'이라는 빅파마의 CEO '스티븐 메릭'(헤리 멜링 분)의 대사다. 불멸에 대한 유전 암호 등 생체적 비밀을 파헤치는 목적으로 주인공들을 납치해 인체실험을 자행하는 전형적 소시오패스다.

악인 '스티븐 메릭', 빅파마 '메릭'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메릭은 가뜩이나 입체적인 인물도 아닌데 작중 비중이 후반부로 갈수록 줄어든다. 인류와 사회에 공헌한다는 제약사가 건물 내 수십명의 무장 인력을 거느리는 상황은 전체적인 몰입감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대형 제약사는 악의 축'이란 일각의 음모론을 그대로 가져다 쓴 클리셰에 가깝다.

다만 영화 품평의 시각을 바꿔보자. 25만 마리의 실험용 쥐 처지에선 '메릭'에 대한 박한 평가는 정말이지 억울할 것이다. '신약 개발을 통해 인류와 사회에 공헌한다'는 명분만 제거하면 희대의 동물 범죄 장본인이다.

영화를 비틀어 본 까닭은 인류를 위해 불멸의 존재를 인체실험 도구로 삼는 것은 영화 속 설정이지만 동물 실험만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극복을 위한 치료제 개발 과정에선 페럿(Ferret)이 대상이 됐다. 페럿은 족제비과에서 유일하게 가축화에 성공한 종이다. 귀여운 외모 덕에 반려동물로도 인기가 높다.

페럿이 코로나19 시국에서 쓰임받는 원인은 특유의 귀여움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의 증세가 사람과 유사하다. 동물 실험 단계에서 개발중인 치료 후보물질의 작용 기전이 어떠한지 효과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여러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상반기 치료제 개발을 위해 페럿을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 뛰어들었다. 다만 주요 공급국인 중국도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았다. 한때 수입이 이뤄지지 않았고 실험용 페럿의 씨가 말랐다. 올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이 시장에 제시했던 동물 실험 기간보다 결과를 늦게 내놓은 주된 원인이다.

국내 실험용 족제비에 얽힌 잔혹사의 전말은 제때, 그리고 제대로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페럿 수급 불균형과 관련한 사실 대신 국내 업체들의 치료 후보물질은 효능이 부족하다든지, 개발은 허수고 주가부양이 목적이라는 뒷말이 자본시장을 채웠다.

이달 동화약품을 비롯한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사가 페럿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연이어 발표했다. 당초 상반기께로 예상했던 시장 예상보다 2개월 가량 발표가 늦어졌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각종 음모론과 진부한 클리셰를 깨부술 만큼 긍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페럿의 헌신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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