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1월 25일 08:0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어나더라운드'를 봤다. 영화는 지루한 수업 방식으로 학부모들의 우려섞인 항의를 받은 역사선생 마틴이 동료 심리학 선생인 니콜리아가 말한 심리학 가설에 따라 실험을 해보는 데서 시작된다.인간의 몸속에는 알코올이 0.05%만큼 모자라기 때문에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사람이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이다. 수업 전 화장실에서 몰래 스미노프 보드카를 홀짝인 뒤 수업을 시작한 마틴은 처음으로 자신의 강의에 눈이 반짝이는 학생들의 표정을 본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창의적인 강의 방식은 금세 학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마틴은 좀 더 창의적이고 활발한 강의를 위해 점차 혈중알코올농도를 높여간다. 0.05%에서 시작했던 실험은 혈중알코올농도가 0.2%에 다다랐을 때 중단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과음은 언제나 사람을 망가뜨린다.
과유불급. 이 명료하고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항상 뒤늦게 깨닫는다. 만취된 채 머리를 땅에 찧어 피가 철철 흐른 뒤에야 '적당히 마셔야지'라는 후회를 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랄까.
요즘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투자 기업의 가치가 전보다 부풀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 넘치는 유동성에 스타트업의 눈높이도 그만큼 올라갔다는 거다. 물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옆집 길동이가 나보다 연봉이 높다면 내 몸값을 올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렇다 보니 펀드레이징 라운드를 잘게 쪼개 프리라운드와 브릿지라운드를 활용하며 기업 가치를 점차 부풀리는 일이 다반사다. 상장을 최대한 늦추고 많은 펀딩을 받는 게 요즘 벤처 업계의 새로운 규칙이 된 것 같다.
물론 초기 기업들이 전보다 손쉽게 더 높은 몸값을 책정받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은 일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넘치는 곳간과 절박함은 대체로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어나더라운드 속 가설에 따르면 0.05%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해줄 수 있는 적당한 음주 덕에 사람은 좀 더 창의적으로 될 수 있다. 필요한 건 단 몇 잔의 술이지 비싼 양주병 컬렉션이 아니다.
초기기업들의 펀드레이징도 마찬가지다.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또는 회사가 좀 더 좋은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운영자금을 구하는 게 모험자본에 손을 내미는 이유다. 호시절이니 일단 당겨 놓고 나중에 사용처를 고민해보자는 식의 자금 조달은 성장을 오히려 더디게 할 가능성이 크다.
비대해진 몸집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매출, 그리고 어떻게든 상장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어쩌면 '한잔 더! (Another Round)'를 외치며 펀드레이징에 나선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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