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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실수요, 허수주문·공모가 '뻥튀기' 잠재울까 [1경5000조의 비밀]③일·대만·홍콩, 일반투자자 수요예측후 최종 공모가 산정…밸류 전문성 하락, 묻지마 청약 가능성도

최석철 기자공개 2022-02-18 13:31:14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 IPO 이후 기관의 허수 주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모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운용 자산을 훌쩍 넘는 주문을 넣는 기관의 행태가 정당한 수요예측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관의 욕심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동안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를 독려해온 제도적 허점 역시 주된 배경이다. 이에 국내 IPO시장의 수요예측 제도 현황과 배경, 그에 따른 허와 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2월 16일 16: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공개(IPO) 수요예측의 가격 결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일반투자자의 투자 수요도 포함시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국내 IPO시장에서 일반투자자의 투자 규모가 눈에 띄게 확대된 데다 실제 공모주 수익률과 연관성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허수 주문'으로 촉발된 기관 중심 수요예측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카드도 될 수 있다.

다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IPO시장이 더욱 밸류에이션보다는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호황기에는 '가격 발견' 기능보다는 물량 확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기관투자자의 ‘허수 주문’ 이상의 혼란을, 불황기에는 중장기 밸류에이션과 크게 동떨어진 공모가 후려치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장가격과 공모가 괴리 방지 가능...해외 일부에선 일반 청약 이후 공모가 확정

국내 IPO시장에서는 1997년 유가증권시장, 1999년 코스닥 시장에 순차적으로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됐다. 수요예측 제도 도입 초기에는 기관투자자가 공모가를 좌우하게 된다는 비판에 일반투자자 역시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 예비 청약을 통해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불과 도입 이후 2개월여만에 사라졌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수요예측 제도에 대한 개인들의 이해도가 낮아 오히려 혼란이 야기된다는 점을 이유로 일반투자자는 수요예측에서 배제했다.

현행 제도상으로도 일반투자자가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다. 2007년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일반청약자의 수요예측 참여분을 취합해 수요예측에 참여하려는 인수인에 대해서도 수요예측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현행상 거의 실시되지 않아 사문화된 방식이다.

기관투자자가 ‘허수 주문’으로 부풀려놓은 공모가를 기준으로 매입 여부만을 결정해야한다는 일반투자자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미국 등과 달리 일본과 대만, 홍콩 등에서는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일반투자자의 수요까지 최종 공모가 결정의 주된 근거로 활용된다.

홍콩 IPO시장은 주관사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하다가 수요예측 막바지에 공모가 밴드를 재설정해 일반투자자 청약을 함께 진행한다. 그 뒤 공모가를 결정한다. 대만 역시 이와 유사하게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이 끝나기 2일 전부터 일반투자자 청약을 진행해 동시에 마감한다.

일본의 경우 기관투자자 수요를 사전조사해 공모가 희망밴드를 설정한 뒤 기관 수요예측과 일반투자자 청약을 동시에 진행한다. 일본과 대만, 홍콩 모두 투자운용에 있어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의 수요가 1차적인 근거로 활용되지만 일반투자자의 수요 역시 최종 공모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다.

국내 IPO시장에서 공모주의 수익률이 일반 청약 경쟁률과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 전체 실수요와 IPO 공모주의 시장가격과는 관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즉 개인청약률이 높을수록 상장 후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와 매매회전율뿐 아니라 공모주 수익률까지도 높았다”고 분석했다.

2011~2021년 전체 IPO 공모주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공모가가 밴드 내에서 결정됐을 때 개인청약률이 200대 1 이하면 7.7%, 200~800대 1 사이에서는 25.3%, 800대 1 초과시에는 67.6%로 나타났다.

주관사가 기관 수요예측 결과에 더해 일반 청약의 정보를 가지고 공모가를 결정한다면 공모가와 시장가격 차이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주관사가 공모가를 결정하기 전에 개인투자자 청약을 하게 되면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의 수요까지 포함하여 검토할 수 있으므로 적정한 공모가 결정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바라봤다.


◇"IPO 본질은 수익률보단 모험자본 공급...호황·불황기 관통하는 제도개선 필요"

최근 3년간 일반투자자의 공모주 투자가 부쩍 늘어나면서 일반투자자의 영향력을 더욱 커졌다. 공모주 수익률이 '따상', '따따상'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고공행진한 덕분이다. 정부 역시 균등배정 등 일반투자자의 공모주 투자 기회를 확대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역대급 자금이 몰렸다.

주요 IPO 빅딜에는 50조원을 훌쩍 웃도는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지난해 SK IET가 80조5366억원으로 신기록을 세운 지 1년도 안돼 LG에너지솔루션이 청약증거금 114조원을 기록하며 경신했다.

다만 개인투자자가 공모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 면에 더욱 우려를 표했다. IPO 과정에서 밸류에이션은 공모주의 단기 수익률보다는 사업 경쟁력과 미래 성장성 등을 모두 아우르는 작업이다. 짧게는 1년 뒤, 길게는 5년 이상 이후를 바라보는 작업이다.

리스크를 부담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수행하는 것은 기관투자자의 역할이다. 수익률을 첫 번째 목표로 삼는 일반투자자와는 투자 방식과 시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유통시장인 증시와 연동되는 IPO시장의 특성상 호황기와 불황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반투자자 영향력이 커질수록 시장 변동성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 호황기에는 부실 기업이 과대 평가받고 불황기에는 유망 기업이 저평가 받는 사례가 부쩍 늘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질적 저하는 피하기 어렵다.

기관투자자의 ‘허수 주문’ 만큼이나 일반투자자의 ‘묻지마 청약’ 역시 문제다. 밸류에이션보다는 단기 수익을 쫓는 행태로 업계에서는 개인투자자의 경우 대다수가 상장 이후 10영업일 이내에 공모주 주식을 처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IB 관계자는 “이전과 비교해 일반투자자의 수준이 크게 높아진 점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청약 결과를 액면 그대로 유의미한 밸류에이션 결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허수 주문’ 등으로 뭇매를 맡고 있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밸류에이션을 진행하는 기관투자자 역시 적지 않다. 이런 기관투자자가 수요예측 과정에서 부각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우선시돼야하는 이유다.

공모주 자체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를 실시하는 작업인 만큼 충분한 리스크를 소화할 수 있는 적격 투자자를 선별해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내용들은 대부분 공모주 시장이 호황기일 때 불거질 수 있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또다시 손질하지 않기 위해선 본질적인 문제를 바로잡는데 집중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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