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4월 07일 14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암(ARM)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세계 반도체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주력인 SK하이닉스까지 '공동 인수론'에 불을 붙이면서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선 공개적으로 인수 의지를 밝힌 두 곳 외에도 삼성전자는 물론 미국 애플,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인수전 참전을 노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딜의 특징은 반독점 규제로 단독 인수는 불가능하고, 공동인수 형태로는 각 기업이 지분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될지, 실제 경영권을 쥘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미래형 반도체 시장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 만큼,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 아키텍처(구조방식)를 보유한 ARM과 주주 관계로 엮이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ARM은 어떤 회사?

ARM은 일반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와는 사업 모델이 다르다. 반도체 IP를 팹리스나 IDM 등에 팔아 라이선스 수수료와 로열티(저작권료)를 받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반도체 기업은 ARM이 그린 중앙처리장치(CP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기본 설계도를 받아 각자의 반도체 칩을 설계한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ARM의 IP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의 95%가 ARM의 설계도를 활용하며, PC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도 ARM의 특허가 널리 쓰이고 있다.

ARM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기업들은 어느 특정기업이 ARM을 단독으로 인수하면, 기존에 받던 로열티를 확 올리거나 경쟁사에는 ARM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는 식으로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동 인수론이 불거진 배경이다. 특히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도 ARM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독자 개발하는 추세가 짙어진 만큼 빅테크 기업들도 관심 가질 수밖에 없는 매물이다.
◇메모리반도체 기업도 노리는 까닭

일반적으로 ARM의 IP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중요하다. 인수 의지를 밝힌 SK하이닉스는 디램과 낸드플래시 세계 시장점유율 2위의 메모리 반도체 강자다. 메모리 반도체 주력인 SK하이닉스가 ARM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라기 보단 미래반도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세트(완성품) 업체의 주문대로 반도체(부품)를 만들어주는 부품 공급사 역할에 갇혀있었다면, 이제는 '메모리 센트릭(Memory Centric) 컴퓨팅'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메모리 센트릭 컴퓨팅은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화두는 메모리에 AI 등 시스템 반도체를 결합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까지 추가한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ARM의 시스템 반도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최근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을 추가한 지능형 반도체(PIM·Processing in Memory)를 개발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AI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진화한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준비하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ARM의 경영권이 다른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넘어가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스템LSI도 하는 삼성전자 참전 가능성은?

시스템 반도체 IP라면 삼성전자에 특히 필요한 자산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 설계·생산 뿐 아니라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한다. 파운드리도 세계 2위 위치에 있고, 세트(가전, 모바일) 사업도 한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에 들어가는 아키텍처는 ARM 등에서 사 오는 실정이다.

ARM의 소프트웨어를 흡수할 수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게 실현 불가능하다면 지분 투자를 노려볼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라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와 AI 프로세서를 하나로 결합한 HBM-PIM(Processing-in-Memory)을 시장에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생산 기반인 파운드리도 하고 있는데,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 생산에 이르는 밸류체인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ARM 같은 기업은) SK하이닉스보다 삼성전자가 훨씬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에 부차적인 시스템LSI 성능을 집어넣는 추세로 가고 있다"며 "4차 산업과 관련된 것들은 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 안에 있는데, 미국이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점유율 60%인 반면 한국은 매우 미미하다. 그래픽 처리장치(GPU)나 CPU 등에는 ARM이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