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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호르무즈와 지부티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1-01 09:00:18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1일 08: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동의 초크 포인트(choke point)는 호르무즈와 지부티다. 정확히는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다. 둘 중 호르무즈는 중동지역 8개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대부분이 통과하고 한쪽이 이란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더 중요한 곳이다. 한국, 중국, 일본이 수입하는 석유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다. 만약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해협이 장기간 봉쇄되면 아시아와 나아가 전 세계의 경제가 붕괴될 것이다. 8개국 중 이란을 제외한 7개국에 미군이 나가 있는 이유다. 미해군 제5함대는 바레인에 사령부를 둔다.

지구상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의 거의 절반이 있는 페르시아만에서 채굴된 원유는 일부 파이프라인을 통해 대서양 방향으로 가고 나머지는 모두 탱커에 실려서 인도양으로 나가는데 그 길목이 호르무즈다. 이란과 오만(월경지) 사이 가장 좁은 곳의 폭은 39km인데 8개의 섬이 있어서 들리는 것 만큼 편리하지 않다. 그 중 7개가 이란의 섬이다. 이란의 섬들은 해협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서 불편은 배가된다.

호르무즈 연안은 안개와 모래폭풍도 심하다. 호르무즈는 지도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불편하고 위험해서 출구 항로와 입구 항로를 구분해 놓았다. 각 항로의 폭은 3.2km, 항로 간 폭도 3.2km다. 유사시 대응 여지가 크지 않다. 교통량과 적재 화물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편하게 지날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니다. 2007년에 미군 핵잠수함과 일본의 오일탱커가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고 2009년에도 미군 잠수함과 수송선이 충돌해서 15명이 부상당하고 유류가 해상에 누출되었다.

이란은 말과는 달리 호르무즈를 봉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군 플러스 사우디와의 전력 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이란은 미사일과 포, 기뢰를 사용해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을 해칠 능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무력 사용 위협만으로 해협의 물류를 정지시킬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떤 선사, 보험회사도 배를 움직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매우 복잡했고 지금도 외교단절 상태에서 전쟁 발발이 염려될 정도로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란도 자국의 석유를 수출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이란은 석유 수출 터미널이 사실상 한 군데밖에 없다. 카크 섬이다. 페르시아만 깊숙이 이란 연안 25km 위치에 있 는카크 섬은 이란 최대의 원유수출항이다. 2012년의 자료에 따르면 이란 원유의 98%가 이 단일 항구를 통해 수출되었다. 1980년대에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 때 이 항구를 집중적으로 파괴한 이유이기도 하다.

호르무즈의 아라비아반도 반대편에 있는 바브엘만데브는 좁은 곳의 폭이 26km로 호르무즈보다 더 협소하다. 예멘 내전이 있기는 하지만 지정학적 긴장은 높지 않은 곳이어서 수에즈 운하를 왕래하는 물류에 호르무즈만큼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윗쪽은 유명한 아덴이 있는 예멘이고 아랫쪽은 인구 약 100만의 이슬람 국가 지부티(Djibouti)다. 지부티 서향의 큰 만 이름이 아덴만이다. 소말리아 해적으로 유명한 아덴만을 거쳐 바브엘만데브를 지나 홍해로 접어들 수 있다. 지부티항은 세계 각국 선박들의 급유와 환적으로 분주한 곳이다.

지부티는 오토만제국을 거쳐 1883년부터 1977년까지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었다. 지금도 아라비아어와 불어 공용이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기지를 두고 있다. 중국의 유일한 해외 기지가 있고 일본도 기지를 둔다. 사용료가 국가 수입의 큰 부분이다. 국가 GDP의 5% 정도를 커버한다. 미국이 매년 6,300만 달러, 프랑스와 일본이 3,000만 달러를 낸다. 중국도 2,000만 달러다. 그 외,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사우디가 기지를 두고 있고 러시아와 인도도 생각 중이다. 독일과 스페인 군대는 나가 있기는 한데 기지는 없어서 장병들이 호텔에서 지낸다. 단순한 물류 보호 차원은 아니고 아프리카에 가장 편리하게 군사기지를 둘 수 있는 곳이 지부티여서 이들 국가의 아프리카 전략과 연계되어 있다.

또, 이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유사시에 자국의 선박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 사우디의 경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정파가 내전에서 이길 경우에 대비하는 목적으로 주둔하고 있고 소말리아는 1981년 이래 영구적인 내전 상태에 있다. UN의 추산으로 소말리아에서는 최대 1백만이 희생되었다.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도 원수지간이다. 1993년에 에리트레아가 독립하면서 에티오피아는 졸지에 내륙국이 되어버렸다. 1998~2000년간 두 나라는 국경과 항구 사용 문제로 전쟁을 치렀다. 7만의 사망자를 냈다. 전쟁에 이기지 못한 인구 1억 2,000만의 에티오피아는 국제교역을 위해 별 수없이 지부티와 케냐로부터 항구를 빌려 쓴다. 2020년에 전쟁과 학살극이 재발해 2022년까지 약 60만 명이 희생되었다. 사실 지부티 자체도 독재국가다. 그리고 작은 나라여서 국방은 물론이고 힘이 없다. 한 개 나라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면 정치적 문제가 되겠지만 여러 나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복수의 외국 군대 주둔은 험악한 주변으로부터 안전도 보장해 준다. 누군가 지부티를 공격하면 감히 미국과 중국도 같이 공격하는 셈이 된다.

문제는 좁은 곳에서 서로 너무 가까이 군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 충돌이 염려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무장한 병력을 가장 가까이 놓고 있는 곳이 지부티다. 7km 사이다. 서로 신경전도 벌인다. 중국은 지부티 진출을 해적 퇴치와 중국-아프리카 상호교류와 협력 차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시선은 다르다.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은 지부티에 대한 금융지원을 대폭 늘렸고 지부티의 경제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만에 하나 지부티가 중국에 거의 예속되다시피 한다면 바브엘만데브의 성격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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