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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장자 승계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12-06 13:45:18

이 기사는 2022년 12월 06일 13: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요즘 인기 있는 재벌 드라마가 가족경영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다룬다. 회장은 3남 1녀 중 장남으로의 승계를 생각한다. 그 이유를 말하는 대사가 인상 깊다. 정리하면, “장남 아닌 누구에게 승계가 일어나면 애들이 인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울 것이다. 그게 바로 지옥이다. 지옥은 죽은 내가 가야지 살아있는 애들이 가서야 되겠는가.”

장자 승계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고 지혜가 들어있는 관습이다. 현대에는 가족경영 기업에서 많이 논의되지만 과거에는 오랫동안 국가 통치구조에 적용되었던 규칙이고 역사를 좌우했다. 북유럽 바이킹들이 8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지로 진출한 것은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초래한 인구 증가가 원인이지만 장자 승계 때문이기도 했다. 나라를 여럿으로 나누어 물려주면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장자에게 단독 승계시킨다. 그러면 다른 자녀들은 각기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고향을 떠나 타지를 정복, 그곳에서 통치자가 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장자 승계 원칙이 언제나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어서 유능하고 야심있는 동생이 권력을 차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고 그 과정은 대부분 무력이 동원되는 살육의 분란이었다. 중세 영국의 왕조싸움, 조선 태종 이방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왕권승계가 유명하다.

창업자가 기업을 크게 성장시키고 자녀가 많은 경우 자녀 중에서 차기 경영자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가족이 해당 기업에 가장 큰 재산적 이익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 아닌 누군가가 경영책임을 맡는 것은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도 회사에 대한 재산적 이익이 가장 큰 사람이 회사경영에 가장 큰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믿어져 왔다.

현대의 거의 모든 법제는 재산은 균등하게 상속, 배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회사의 경영권에 대해서는 규칙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속 회장의 생각처럼 장자 승계가 원칙으로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상속재산에 주식이 많아서 장자 승계에 무리가 따르는 경우 기업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구도 내에서 계열분리가 이뤄져 가족간 분쟁을 방지한다.

가족 내 승계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외부인이 일시적으로 경영책임을 맡는 사례도 있다. 토요타와 피아트가 대표적이다. 루퍼트 머독의 경우 그룹 전체는 자신과 가족이 경영하되 몇몇 핵심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바이아컴CBS에서는 가족과 외부인들 간에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는데 결국 가족이 이겼다. 여기서는 가족 내 분쟁이 가족을 일시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천 년이 넘은 일본의 한 기업에서는 장자 승계가 일어나면 다른 자녀들은 모친 성을 따라 이름을 다 바꾼다. 승계를 확실하게 지원하는 특이한 방법이다. 승계할 아들이 없는 경우 친족 내에서 법률적인 전적을 통해 장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탈리아와 국내 기업의 사례가 있다. 그 방법도 여의치 않으면 카길처럼 사위에게 승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아들이 없어도 딸이 유능하면 사위에게 갈 것 없이 딸이 승계한다. 화웨이다.

ESG 이념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주주들은 회사를 정리하고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고 용도가 다 하면 해산하고 청산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가족은 어려움을 겪는다. 오래 일했을수록 더 큰 위험에 부딪힌다. 그런데 기업과 달리 사람은 수명과 건강 조건이 있어서 기업이 지속되어도 경영자는 바뀌게 되는데 그 과정이 기업의 성공과 존속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다툼 없는 경영권 승계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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