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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thebell note]

정명섭 기자공개 2024-03-29 08:07:59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7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5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1·2부로 구성된다. 유부남 영화감독 춘수(정재영 분)가 미모의 화가 희정(김민희 분)에게 작업을 거는 이야기의 줄기는 같다. 다만 춘수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진즉에 밝혔는지에 따라 두 사람의 감정선이 확 달라진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짧은 만남으로 끝난다.

영화는 맞고 틀림의 기준이 특정 시점이나 행동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꾸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같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한 곳인 삼성SDI는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했다. 자체 현금흐름 내에서 자본적지출(CAPEX)을 통제했다. 이에 북미 생산공장 설립이 가장 늦었다. 후발주자인 SK온에 수주잔고가 밀렸다. 2022년 삼성SDI가 투자업계로부터 저평가받은 이유다.

작년 하반기부터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자 삼성SDI의 소신 투자는 현명한 선택이 됐다. 경쟁사들의 합작 투자 일부가 지연되는 속도 조절 속 삼성SDI만 계획에 차질이 없었다. 대규모 자금 조달 고민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카카오는 어떤가. 김범수 창업자는 2010년대 들어 100명의 CEO를 육성한다는 일념으로 유능한 리더들에 계열사 경영을 맡겼다. 2020년 12월 말, 카카오는 계열사 140여 개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2021년 코로나19 국면엔 비대면 수혜주로 주목받아 현대·기아차, 포스코 등을 제치고 시가총액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카카오식 성장 공식은 정답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21년 카카오페이 최고경영진들이 대규모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가 하락을 불러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 계열사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골목상권 침해, 플랫폼 수수료 인상 논란으로 번졌다. 김 창업자는 그해 국정감사장에 불려가 호되게 질타를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작년 말 자율경영 체제 철폐를 선언했다.

SK그룹도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M&A) 기반의 확장 전략을 다시 가다듬고 있다. 그룹의 주력사업 부진, 글로벌 경기침체로 올해는 투자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대내외 경영 환경에 따라 특정 기업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에서 그때는 맞았던 게 지금 틀릴 수 있는 건 필연이다. 어쩌면 맞고 틀림을 일일이 평가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각 기업이 현 상황에 맞게 어떤 최선의 대응을 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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