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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기관 톺아보기]'사장-이사장' 공존, 예술의전당 쌍두체제의 의미⑤[조직구조]이사장제→사장 중심제 전환, 별도 절차없이 문체부 인선…이사장 역할은 희미

고진영 기자공개 2024-05-27 08:12:01

[편집자주]

공공극장은 공간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창조의 장이자 공연 문화의 산실이다. 국내 첫 국립국장은 1950년 부민관에서 개관했다. 이후 뚜렷한 거처 없이 피난지였던 대구 문화극장, 명동 시공관 등을 전전하다 1973년 남산 기슭에서 새로 문을 연다. 문화예술진흥법이 막 제정되면서 문화정책 기틀이 자리잡았던 때다. 그리고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설립. 1988년엔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신(新) 국립극장'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이 만들어졌다. 이제 70년의 역사를 지난 공공극장의 현재는 어떨까.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3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술의전당은 사장과 이사장이 모두 있는 이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표면적으론 옥상옥 형태지만 사실상 사장이 경영을 이끈다. 이사장이 담당하는 역할은 크지 않은데, 이런 조직구도가 만들어진 배경은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의전당 사이의 과거 주도권 다툼과 무관치 않다.

원래 전당은 이사장이 경영을 책임지는 형태로 출발했다. 설립 초기 기획과 부지선정을 주도했던 김동호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이 대통령에게 사장 중심의 운영을 주장했지만 이사장제로 결론이 났다.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한 이는 언론인 출신인 윤양중 현대사회연구소장이다. 1986년 재단법인 예술의전당 발족을 준비하면서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하지만 이사장제는 길게 가지 못하고 2대째에서 막을 내렸다. 이수정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이 1991년 문화부 장관에 오른 뒤 사장제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을 맡고 있던 김동호 실장은 오찬 자리에서 이수정 장관과 예술의전당을 두고 의견을 나눴고, 이후 사장제 전환이 추진됐다.

◇잡음 많았던 사장직 신설

1992년 2월 문화부는 사장 중심제 도입을 위해 예술의전당 정관 개정을 이사회에서 의결할 것을 지시했다. 재원 부족 해결을 위한 경영활성화, 집행력 복원을 위해선 정관 개정이 시급하다는 취지였다. 조경희 이사장(사진)을 필두로 이사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문화부의 의지에 밀려 안건이 통과됐다.

조직 개편과 함께 김동호 실장이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에 올랐다. 다만 부임까지 일련의 과정이 순탄친 않았다. 예술계 뿐 아니라 예술의전당 내부에서도 자율성 훼손에 대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문화부가 '지원하되 관여는 하지 않는다'는 이상적 정책방향을 역행한다는 비판이었다.

실제로 당시 문화부와 예술의전당은 알력 다툼이 공공연했다. 예술의전당 부속 기관 이름을 문화부가 일방적으로 바꿨다며 시끄럽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축제극장이 서울오페라극장, 콘서트홀이 서울음악당 등으로 개명된 때가 이 시기다.

사장 직제의 신설에 대해 예술의전당 노조는 "집행력을 복원해야 한다는 문화부의 주장에 일리가 있더라도 이사장을 교체하면 간단한 문제인데, 정관 개정까지 하면서 사장직을 신설한 것은 파워게임의 절충수에서 나온 결과"라고 반발했다. 기업체도 아닌 전당을 이사장-사장의 기형적 체제로 끌고가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주장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정관료 중심 인선…문체부 출신 '다수'

이후로도 예술의전당 사장은 문체부 쪽 인사를 중심으로 발령이 났다. 예술의전당은 기관이 지니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국공립 예술단체들의 맏형격인 만큼 사장이 바뀔 때가 되면 문화계 안팎에서 인선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특별한 공모나 추천 절차 없이 문체부 장관이 사장과 이사장을 임명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엔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인사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해외처럼 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예술의전당 역대 수장을 보면 김동호 사장 후임인 허만일 사장을 포함해 김상식 사장, 김순규 사장, 신현택 사장, 김장실 사장, 모철민 사장 등이 모두 문체부 차관이거나 기획관리실장이었다.

전임 유인택(16대) 사장, 그 전임인 고학찬(14·15대) 사장의 경우 문체부 출신은 아니지만 방송, 영화계 인사로 분류된다. 예술인이 예술의전당 수장으로 임명된 것은 김용배 사장(2004년) 이후 현임 장형준 사장이 두 번째다.


◇'예술인 출신' 장형준 사장, 순수예술 확대 과제

피아노를 전공한 장형준 사장(사진)은 맨해튼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1995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런던 필하모닉, 도쿄 필하모닉,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등 국내외 악단과 협연하고 독일 본 베토벤 콩쿠르, 클리블랜드·더블린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예술의전당 사장에 오른 것은 2022년이다.

피아니스트로서 활동 보다는 교육자 경력이 두드러지다 보니 그의 사장 발탁은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드물게 등장한 순수예술인 출신 수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부임 이후 장 사장이 순수예술 위주 공연기획을 늘리겠다는 방향성을 강조해온 점도 눈에 띈다.

장 사장은 "예술의전당은 변화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취임 첫 해를 시작했다. 대관보다는 오페라, 발레 공연 등 순수예술 확대를 골자로 한다. 올해는 전관 개관 31주년을 기념하는 비전 선포식을 열고 '누구나 세계적 수준의 공연과 전시를 누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새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2021년 74%까지 치솟았던 대관사업 비중이 2022년 48%로 떨어졌다.

2024년 2월 14일 열린 예술의전당 '新미션·비전' 선포식

장 사장과 쌍두 체제를 이루고 있는 이사장은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이다. 예술의전당 이사장 자리엔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등 문화예술 분야에 기여한 재계 쪽 인사들이 심심찮게 임명된다. 이사회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과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민인기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을 비롯해 학계와 방송계 인사 등 16인으로 구성돼 있다.

◇최소화된 이사회 권한, 지난해 단 2차례 개최

다만 이사장과 이사회는 사실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사회에 이사장이나 사장을 추천, 선출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예산과 결산, 규정개정안 추인 등 형식적 행위를 제외하면 기능이나 역할이 크지 않다. 이사회의 존재 의미가 유명무실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최근 3년간 이사회 활동을 보면 2021년과 2022년은 총 4차례, 지난해는 두 차례 이사회가 열렸다. 길면 반년에 한 번 회의를 하는 셈이니 뜸하다고 볼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문화예술 쪽은 프로그램 기획이 짧아도 1년은 걸리는데, 3년 전부터 공연 기획을 하는 해외와 비교하면 이것도 빠른 편"이라며 "호흡이 길다 보니 이사회가 수시로 체크할 일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은 2월 열린 140차 이사회에서 '2022년 회계결산'과 '불용자산 처분' 등을, 12월(141차)엔 '2024년 사업계획 및 예산', '규정개정안' 등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올 2월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결산과 불용자산 처분을 142차 이사회에서 처리했다. 이사회가 열린 장소는 각각 예술의전당 음악당, 서울신라호텔 레스토랑 팔선, 레스토랑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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