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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법정서 밝힌 '독립경영'

안경주 기자공개 2012-11-09 17:37:42

이 기사는 2012년 11월 09일 17: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대법정.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공판 시간인 오후 2시가 안돼 법정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20대의 젊은 사람부터 머리가 희끗한 원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공판을 기다렸다.

이들은 그룹 계열사 자금을 사적인 용도에 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방청하기 위해 모였다. 최 회장이 직접 참석하기 때문인지 SK텔레콤 정만원 부회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모습을 보였다.

공판을 앞둔 1시50분. 최 회장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인 듯했지만 여러 고민이 담긴 모습이었다. 뒤이어 동생 최재원 부회장도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판은 오는 22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열린 최 회장에 대한 마지막 신문이다. 하지만 새롭게 드러난 정황은 없었다. 최 회장은 "2003년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풀려난 후 투명한 경영이 회사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침통한 심경을 말했을 뿐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불법송금에 관해 전해 알지 못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최 회장은 공판 도중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가족과 관계된 진술을 할 때는 달랐다. 그는 변호인 측 신문에 답하는 와중에 "선친께서 '전화위복'을 강조했던 일이 떠올랐다"고 말하며 울먹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부인 노소영 씨와 관련한 얘기가 나왔을 때는 감정을 쉽게 추수리지 못했다.

최 회장은 변호인 측 신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최근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따로 또 같이 3.0'이란 새로운 경영체제 개편안에 대해 장시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밝힌 '따로 또 같이 3.0'의 핵심은 △자율 책임경영 △이사회 중심 경영 △위원회 중심의 그룹 운영체제 △자주사 역할의 재정립이다.

최 회장은 법정에서 새로운 경영체제 개편안에 대해 "2007년 지주사 설립 이후, 지주사가 각 계열사를 도와주고 인도하는 게 중요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지주회사가 각 계열사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경제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완벽한 자율경영을 하려한다"고 말했다. 즉, 한 조직의 지도자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각 계열사의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경영을 강화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선대회장이 정착시킨 SKMS(그룹 경영철학)는 토론과 토의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면서 "제가 지시를 하더라도 형편에 안 맞으면 거부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독립경영의 정의를 내린 셈이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1인 중심의 의사 결정 구조로는 선제적 대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더욱 느꼈을 수도 있다. 최 회장이 평소 "수백억, 수천억짜리 의사 결정을 나보고 다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급해 왔던 점에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오너에게 여전히 계열사 CEO와 주요 임원들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아무리 자율권을 준다고 해도 오너 의중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최 회장이 법정에서도 강조한 독립경영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특히 '오너 중심의 재벌'이란 색채가 강한 한국 기업에서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SK의 새 시도가 성공하려면 오너인 최 회장과 계열사 CEO들의 확고한 실행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법정에서 밝힌 '독립경영'의 뜻을 최 회장이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려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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