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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의 야심, '육·해·공' 삼각편대 완성 [범한진家 흔들리는 수송보국 꿈]②'운송사령관'서, 재계 서열 8위까지…'한진' 글로벌물류사로 발돋움

이광호 기자공개 2019-02-11 13:31:00

[편집자주]

'육·해·공' 전 영역에서 물류사를 설립, 국내 최대 수송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던 범한진가(家)가 수빅조선소마저 매각하거나 잃을 상황에 처하며, 수송 분야 삼각편대의 한 축인 '해상' 운송 기능을 완전히 잃을 위기다. 범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파산에 이어 한진중공업의 상선 건조 기능마저 잃게 될 경우 해상운송과 관련한 산업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꿈이었으나 지금은 위기에 처한 '수송보국의 꿈'에 대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1월 28일 11:0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송보국(輸送報國)'.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은 한진을 육해공 수송그룹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물류사업을 키웠다. 그 결과 국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진가(家)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수송산업의 역사는 곧 한진그룹의 역사"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여전히 자부심을 드러낸다.

한진그룹에 오래 몸 담았던 한 원로는 "해운사들 모이는 자리에 가보면 다른 해운사들 오너들이 우리 임원들 한테도 쩔쩔 맬 정도로 해운업계 쪽에서 한진해운의 위세가 대단했었다. 항공 쪽에서 대한항공은 말 할것도 없었다"며 "국내에서 운송·수송 쪽으로 우리 회사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가도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그룹 모태 '한진상사'…주한미군 군수물자 수송계약으로 사세 확장

한진그룹의 시작은 군수물자였다. 조 창업회장은 폐차된 미군 트럭을 한대 얻어 물자를 나르며 돈을 벌었다. 1945년 11월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그는 주한미군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했다. 한때 이연공업사를 차렸던 실력을 발휘해 미군 트럭을 고쳐주며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러다 1956년 주한 미8군으로부터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따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업의 기틀을 닦았고 1958년 한진상사의 상호를 한진상사 주식회사로 바꿨다.

조 창업회장의 화물사업은 크게 성장했다. 이를 토대로 1961년 한국항공을 설립해 비행기 대절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한진관광을 설립해 서울-인천 구간에서 한국 최초의 좌석버스 사업을 벌이며 운송전문회사로 거듭났다.

한진그룹이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린 시기는 베트남전쟁이다. 1966년 3월부터 주월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해양운송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컨테이너 전문 해운사인 대진해운(한진해운 전신)을 세웠다.

한진해운은 조 창업회장이 한진상사를 한진그룹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 법인이다. 국내·외 선사와 항만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고 선복량 기준 세계 5위까지 성장했다. 삼성과 LG는 물론 월마트, 홈디포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해 세계 최대 해운동맹 CKYH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조중훈 창업주
월남전 한진상사 시절의 조중훈 회장(맨 왼쪽)

◇'한국 최초' 택배사업 진출…이후 항공·해운서 존재감 드러내

1969년 조 창업회장이 이끌던 한진그룹은 대대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국영으로 운영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공중운송 시대를 열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적자 공기업이었다. 누적 적자 외에 27억여원에 달하는 금융 채무로 두 차례 공매가 실패로 끝난 회사였다.

조 창업회장은 대한항공공사의 사명을 대한항공으로 변경하고, 1970년 '보잉747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천문학적인 구입비용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조 창업회장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1972년 9월 5일 국내 최초로 보잉747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비행기 도입을 계기로 대한항공은 1973년 5월 태평양 노선, 1974년 9월 화물 노선을 개설했다.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대한항공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공중운송의 틀이 어느정도 갖춰진 뒤 조 창업회장은 육상과 해상 운송 강화로 다시 눈을 돌렸다. 조 창업회장이 이끄는 한진그룹은 1980년 동아통운을 흡수합병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세를 불렸다. 1983년 국내 운송업 최초로 연안해운 수송업을 시작했다. 이어 1989년 국영이던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뒤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2년에는 한진택배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택배 사업에 진출했다. 이 시기 한진그룹의 '육·해·공 삼각편대'가 완성됐다.

꾸준히 사세를 불리던 한진그룹은 외환위기를 맞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기업 구조조정기인 1998년 한진그룹은 계열사를 한층 더 단단하게 다졌다. 한진그룹은 한진관광과 KAL개발을 합병했다. 이듬해에는 한진건설과 한진종합건설이 한진중공업에 흡수합병됐다. 2000년에는 한진해운이 싸이버로지텍을 설립했고 항공종합서비스와 칼호텔네트워크를 계열사에 추가했다.

2002년 한진그룹은 21개 계열사와 2개 학교법인, 2개의 병원을 거느린 대기업 집단으로 발돋움 했다. 2002년 4월, 한진그룹은 자산 21조5960억원, 매출액 15조2310억원을 기록하면서 재계 서열 8위로 올라섰다.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물류산업의 대명사가 됐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화물을 선적해서 부산항으로 끌어 모으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북미로 수송하는 그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해운사였다"며 "미국에서는 대한항공은 몰라도 한진해운, 한진은 다 알 정도로 물류업에서는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유명세를 떨치던 회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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