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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의 글로벌 오토게임]프랑스 자동차 삼국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5-13 10:09:42

이 기사는 2019년 05월 13일 10: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트로엥(Citroen)은 푸조(Peugeot), 르노(Renault)와 함께 프랑스의 3대 자동차 브랜드다. 한국에서는 별로 존재감이 없지만 프랑스 자동차산업 역사에서는 지존의 자리에 있는 회사다. 창업 초기에 프랑스를 휩쓸었고 세계 최초로 전륜구동 자동차를 생산했던 회사이기도 하다. 에펠탑에 25만 개의 전구를 달아 광고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창업자 앙드레 시트로엥(Andre Citroen:1878~1935)은 자수성가한 유대계 엔지니어였다. 여섯 살 때 부친이 자살했고 모친도 청년기에 여의었다.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자동차 사업을 시작해 볼 꿈을 가지고 포드와 GM에 접촉했지만 거절당했고 은행들도 젊은 사업가에 등을 돌렸다. 친척과 친구들에게서 사업자금을 빌렸다. 그래서 1919년에 회사를 만든 후 1927년까지 단독 주주였다.

1927년에 시트로엥은 한 살 차이로 유년기부터 알고 지낸 루이 르노(Louis Renault, 1877~1944)의 르노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하게 공장을 신축했다. 르노가 최첨단 공장시설을 시트로엥에게 보여주면서 생산과 판매를 각각 분담하는 합작을 제안하자 시트로엥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한다(DTW). 공장 신축과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은 라자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었다. 주식, 회사채, 대출 등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받는 대가로 이사회에 라자드의 3인이 이사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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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의 지분은 25%로 축소되었지만 복수의결권을 활용해서 70% 의결권을 유지했다. 라자드가 회사의 경영에 입김을 행사하려고 하자 시트로엥은 ‘CEO와의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3인의 이사를 축출해버렸다. 이 때문에 시트로엥은 1930년대 초에 회사의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본인은 사치와 거리를 두었고 신기술과 장비에 투자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준비하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러나 시트로엥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재정 상황은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되었다. 결국 1934년에 회사는 타이어제조사 미쉐린에 인수당하고 창업자 시트로엥은 다음 해인 1935년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 지원해 주지 않은 프랑스 정부에 서운함을 표시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고인에게 제공되는 국가장례의식도 거절했다. 루이 르노도 참석했는데 하버드대의 역사학 교수 란데스의 책(Dynasties, 2006)에 따르면 사람들은 르노가 시트로엥이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수근댔다고 한다.

미쉐린은 시트로엥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으나 시트로엥 일가는 회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장남 베르나르 시트로엥은 스페인에 있던 지사에서 일하다가 얼마 후 작가가 되었다. 그 덕분에 나치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나중에 영국 공군에 입대해서 전공을 세우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시트로엥의 다른 후손들은 전쟁 때 모두 나치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이로써 시트로엥의 시트로엥 혈통과의 관계는 마감되었다.

시트로엥의 경영권을 인수한 피에르 미쉐린은 1939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친구이자 시트로엥의 이사였던 불랑제가 1950년 타계 시까지 회사의 경영을 맡았다. 불랑제는 나치 점령군에 비협조적이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의 협력을 거부했고 독일군이 사용할 트럭의 생산라인에 의도적으로 태업을 하기도 했다. 종전 후 나치 게슈타포 파리사무소에서는 불랑제를 1번에 적어놓은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르노는 나치에 충실히 협조했고 독일군에 3만2천 대의 차량을 공급했다. 전쟁이 끝나고 르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박탈당한 채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회사는 르노 일가에게는 한 푼 보상 없이 바로 국유화 되었다. 그래서 파리에는 시트로엥의 이름을 딴 거리와 공원은 있어도 르노의 이름은 추모되지 않는다.

나치 치하에서도 시트로엥의 엔지니어들은 연구를 계속해서 후일 아방가르드라고 평가되는 3종의 베스트 셀러 자동차를 완성하게 된다. 소형차 2CV, H밴, DS패밀리카 셋이다. 그 덕분에 시트로엥은 상당기간 동안 포르쉐나 페라리 못지않은 브랜드 로열티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1968년에는 포세이돈이 들고 다니는 삼지창의 이탈리아 마세라티를 인수했고 최대주주 미쉐린은 피아트에 49% 지분을 매각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회사의 제품개발 실패와 재무관리의 어려움이 겹쳐 시트로엥은 위기 상황을 맞는다. 1973년에 미쉐린은 피아트에 매각했던 지분을 다시 사왔다. 그러자 고용불안을 염려한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푸조의 시트로엥 인수를 추진했다. 1974년 푸조는 시트로엥의 지분을 인수한 후 PSA그룹을 지주회사로 설립해 오늘에 이른다. 마세라티는 1975년에 드 토마소에 매각되었다(지금은 FCA 소유다). 프랑스 자동차산업은 르노와 PSA로 재편되었고 두 회사 다 글로벌 10위권에 든다.

PSA는 1978년에 위기의 크라이슬러유럽을 단돈 1달러에 인수했다. 물론 채무도 같이 인수한 것이다. 크라이슬러유럽은 1967년에 프랑스의 심카, 영국의 루츠, 스페인의 바레이로스가 합병해서 탄생했던 회사다. 현재 PSA의 대주주는 각각 13.68%씩을 보유한 중국 동펑자동차, 프랑스 정부, 푸조패밀리다. 르노와 같은 규모의 약 18만 명을 고용하는 대형 사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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