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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을까 [thebell note]

이충희 기자공개 2019-12-30 08:57:57

이 기사는 2019년 12월 27일 07:4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올해 유통업계 전반을 짚으며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쿠팡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모세의 운명과 같다고 봅니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 신이 약속한 새 땅으로 이끈다. 이들은 홍해를 건너 척박한 광야에서 40여년을 견딘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직전에 운명을 달리한 모세는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다.

유통업을 진단하는데 모세가 소환된 건 현재 쿠팡이 처한 모습이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유통업계는 운명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업계를 예상보다 빠르게 전환점으로 인도한 당사자는 쿠팡이다. 쿠팡은 자신을 뒤따르는 기업들을 데리고 척박한 광야를 지나 새 시장으로 나아가는 선구자 역할을 맡았다.

쿠팡을 선구자라 칭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외부자금을 유치해 2~3년 간 수조원을 퍼붓는 투자를 하자 후발 주자들도 뒤따라 실탄 마련에 나서고 있다.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빠른 배송문화는 이제 업계 트렌드다. 물류센터와 고도화된 IT 시스템은 이커머스의 기본 옵션으로 자리잡았다.

쿠팡의 자본 융단폭격은 기존 시장의 시곗바늘을 빠르게 돌리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유통가를 외면하는 시기는 예상보다 더 일찍 찾아왔다. 급격한 변화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대형마트는 올해 처음 받아보는 적자 성적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커머스에 뛰어든 기업들의 목표는 결국 한곳으로 모아진다. 가나안에 입성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남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새 시장에 인도 받는 특권을 누릴 것으로 이들은 믿는다. 올해 국내 이커머스 규모는 100조원 이상으로 커졌다. 2022~2023년엔 200조원을 넘어설 거란 예상치도 있다. 조만간 이 시장에서도 이익이 날 거란 기대감이 확실히 영글고 있다.

반면 쿠팡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외부에서 4조원 넘는 자금을 조달했지만 추정대로라면 내년 쯤 모두 바닥난다. 손정의 회장은 더이상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에 자본을 투입할 수 없다는 뜻을 시사했다. 그간 쿠팡의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 진짜 바닥난 곳간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국내 유통 대기업들은 내년부터 반격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올 하반기 부동산을 팔고 임원을 물갈이하는 등 뼈를 깎는 쇄신을 했다. 언제든 필요하면 또 부동산을 팔아 온라인에 태운다는 각오다. 지난 수십년 동안의 업력은 이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쿠팡은 과연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생존하려면 M&A나 해외 IPO처럼 불가피한 선택지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시장은 이 시나리오 외엔 답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내년 업계의 관심은 쿠팡이 모세의 운명을 거부할 수 있을지에 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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