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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쿠팡, 새 역학관계 등장에 다양한 추측 신동빈 회장, 김범석 대표와 빈소서 조우…이커머스·M&A 시장 촉각

이충희 기자공개 2020-01-23 09:41:59

이 기사는 2020년 01월 22일 13:0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장례식 둘째 날이던 21일 아침. 식장에 뜻밖에 인사가 찾아왔다. 김범석 쿠팡 대표다. 이날 빈소에 모인 취재진들 사이에선 김 대표의 방문을 다소 이례적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나흘 간에 걸친 장례식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허창수 전경련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오랫동안 한국 재계를 이끌어 온 오너가들이 대부분 출동했다. 그러나 네이버, 카카오 같은 벤처 창업 1세대 오너는 물론 이베이코리아, 위메프, 티몬, 컬리 등 다른 이커머스 대표들은 모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범석 대표 방문을 두고 업계에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했던 배경이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 빈소가 차려진 21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다양한 재계 거물이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취재진 수십여명이 대기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다리 놨나

"김범석 대표가 신동빈 롯데 회장과 일면식이 없었다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한두번 이상 사업 파트너로서 만남을 가졌던 게 확실하다. 두 인사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아닐까 싶다. 신 회장과 김 대표 사이 공통분모는 그 외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한 유통업계 임원은 둘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추측했다. 롯데는 국내에서 이커머스 후발주자다. 한때 티몬 인수를 검토했을 만큼 외부 기업 인수합병(M&A)에 관심을 드러내왔다. 자금줄이 서서히 조여오는 쿠팡도 기업공개(IPO)나 M&A 시장을 노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쿠팡에 가장 많은 돈을 출자한 손정의 회장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놨을 거란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IPO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쿠팡이 전략적으로 빈소를 찾았다고 보는 시선들도 있다. 롯데 오너일가와 재계 거물들이 모인 이날 장례식장에는 국내외 취재진 수십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연달아 플레시 세례가 터지는 이곳에 홍보임원들을 대동하고 조문을 마쳤다.

한 관계자는 "지분 매각을 고려하는 쿠팡이 전통의 유통 대기업 롯데 오너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며 "롯데가 쿠팡을 보고 있다는 것은 국내외 IPO 시장에서 분명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다른 관계자는 "롯데가 쿠팡을 삼키기에는 이미 쿠팡의 몸집이 너무 커져 M&A 관계로 엮이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유통 공룡과 신흥 강호의 새 역학관계 등장에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울점 많은 경쟁사…확대 해석 경계 목소리도

롯데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은 물론 식음료 분야에도 강점이 많다. 대표적인 계열사로 롯데칠성음료를 두고 있다. 이날 김범석 대표가 빈소를 떠날 때까지 배웅한 롯데 임원도 이영구 롯데칠성 대표였다. 지난해 쿠팡은 코카콜라음료를 자회사로 둔 LG생활건강과 납품 문제로 한차례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식음료 회사 관계자는 "몇몇 납품업체들과 관계가 흐트러진 쿠팡 입장에선 롯데를 중요한 사업 파트너로 생각할 것"이라며 "롯데 계열 식음료 회사들도 온라인 거래액이 급증한 쿠팡과 관계는 중요하다"고 귀뜸했다.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선 김범석 쿠팡 대표(왼쪽)를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대표(중앙)가 배웅하고 있다.

이커머스 신흥 강호와 오랜기간 군림해온 유통공룡의 만남은 사실 어색하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서로 경쟁상대이긴 하지만 배워야 할 점이 많은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롯데는 일찌감치 앞서 간 쿠팡의 사례를 참고해야 하고, 쿠팡은 오랜 경험치가 축적된 롯데의 강점을 흡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쿠팡은 고 신 명예회장 빈소 방문과 관련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쿠팡 관계자는 "롯데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는 만큼 찾아가 예의를 표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김 대표가 신 회장과 앞서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오너가의 개인적인 친분에 대해서는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여러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유통업계 두 거물이 일반적인 비즈니스 이상의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신동빈 회장 일본 쪽 인맥이 넓다는 점에서 손정의 회장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시장에서는 과거 손 회장이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의 만남에 주목하며 국내 이커머스에서 또다른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네이버가 네이버쇼핑을 분사해 이커머스에 본격 나설 거란 관측이 제기되면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조문객을 단순 비즈니스 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라면서도 "쿠팡 대표가 홍보 임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그 자리에 섰다는 건 전략적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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