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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 2002 FIFA 월드컵의 기억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2-06 10:05:19

이 기사는 2020년 02월 06일 10: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은 씨름을 매우 좋아했다. 신입사원 연수 때마다 씨름을 빼지 않았고 아산 본인이 샅바를 매고 직접 경기에 나설 정도였다. 아산은 1983년에 열렸던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VIP석에서 다 보기도 했다. 이만기 선수가 스타탄생했던 대회다. 씨름이 별 인기가 없어진 후에도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이 상당 기간 후원을 한 이유다.

그리고 현대는 축구와 특히 인연이 깊다. 한국 축구 최대의 후원자다. 현대오일뱅크가 오랫동안 K리그 스폰서였다.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은 1993~2009년 16년 동안 대한축구협회 (4선)회장, 1994~2011년 동안 17년 동안 FIFA (4선)부회장으로 활동했고 결국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현재에도 2013년부터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이기도 하다. 정몽준 이사장은 울산 현대 구단주이며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전북 현대모터스 구단주다.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도 정몽준(초대~4대), 정몽규(9대),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10대~현재)이 회장을 맡았다.

2002 FIFA 월드컵 유치전은 당시 FIFA 내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거의 세계대전을 방불케 했다. 일본을 지지한 펠레와 한국을 지지한 마라도나가 대립했고 남미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FIFA 개혁파 요한슨 UEFA 회장이 일본 편이었던 FIFA 아벨란제 회장을 견제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몽준 부회장이 공동개최를 받아들인다고 선언했고 FIFA는 결국 한국, 일본 두 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 한쪽이 월드컵을 개최하면 다른 한쪽은 엄청난 좌절감에 빠질 것이라는 이상한 명분으로 사상 최초의 공동개최를 결정했다. 정몽준 부회장이 FIFA 내 남미세력을 유럽세력으로 견제하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FIFA 역사 상 첫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이었다(2026년 월드컵은 캐나다, 멕시코, 미국 3국 공동개최다).

그러나 정작 아산은 1996년 5월 31일에 FIFA가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도록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몽준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면서 시큰둥하게 정 이사장에게 핀잔을 주었다고 알려진다. 일본을 제치고 88서울올림픽을 유치했던 아산은 “하려면 단독개최를 해야지 [일본과] 무슨 공동개최냐”면서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아산과 축구에 대해 ‘담담한 열정’을 되새기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버지였고, 이 세상을 가르쳐 준 것은 축구였다. 아버지는 커다란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 열정은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타오르면서 자신을 밀고 가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이었다. 축구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국제 외교의 치열한 각축장인 FIFA의 정치를 경험하면서, 그리고 세계 정상들을 만나면서 지구촌의 정치를 직접 체험했다. ‘2002 월드컵’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지구를 38바퀴 돌았는데, 국민들은 광화문 길거리를 가득 메운 거대한 붉은 물결로 답해주었다.”

우승컵은 독일을 2:0으로 꺾은 브라질이 가져갔다. 통산 5회째 우승이었다. 한국팀은 터키에 이어 4위에 올라 ‘4강 신화’를 썼다. 애초의 목표는 16강이었는데 그조차 달성이 힘든 목표였다. 스페인, 잉글랜드가 한국의 뒤를 따랐다. 한국팀 감독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는 국민 영웅이 되었고 박지성 선수가 스타로 탄생했다. 히딩크는 자꾸 상대팀에게 5:0으로 진다고 해서 경질 위기에 놓였던 적이 있는데 정몽준 회장의 신임으로 명장이 되고 역사를 쓸 수 있었다.

아산이 유치했던 88올림픽이 그 스케일과 정치경제적 파급효과는 더 컸지만 아들 정몽준 이사장이 유치했던 월드컵은 국민적인 열의와 감동 면에서 올림픽보다 더 큰 빅 이벤트였다.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도 되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정 이사장의 책, 140~215의 내용이 있다).

아산의 유형적 유산은 우선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들이다. 그러나 아산의 후손들과 아산이 양성한 기라성 같은 전문경영인들도 그에 못지않은 유산이다. 그렇게 본다면 기업인으로는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가장 큰 유산이고 정치(7선 의원)와 국제관계, 스포츠에서는 정몽준 이사장이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그래서 2002 월드컵도 아산이 한국에 남긴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스포츠에는 현대의 산업사회가 지향하는 규율, 경쟁력, 인내, 성취, 협동과 희생 같은 다양한 가치가 반영되고 추구된다. 이런 가치들은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통해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미디어에 의해 정치의식에 편입되며 스포츠 우상들을 통해 인격화되고 대중화된다. 이로써 스포츠는 기존의 사회규범과 사회 구성원들의 일반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는 스포츠가 사회통합에 기여함을 잘 보여주는데 2002 월드컵은 스포츠의 사회통합 기능이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다. 항상 나누어져 아웅다웅하는 우리 역사에서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었던 얼마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2002 월드컵은 두고두고 새겨보는 국가적 기억이다. 2002 FIFA 월드컵의 감동이 언젠가 다시 한번 한국 땅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아산의 핀잔을 받지 않게 단독개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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