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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LG그룹, 구본무 '클린' 레거시 지속가능한가국민정서, 장자 경영권 승계에도 관대…꼼수·편법 없는 소유권 강화

박상희 기자공개 2020-06-11 08:15:17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8일 07:24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불로장생'. 영생을 꿈꾸는 건 진시황 이래 인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창업주들은 본인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가업을 물려 받은 자손을 통해 본인이 세운 기업이 천년만년 건재하기를 바란다. 바람과 달리 숙원을 이룬 경우는 흔치 않다. 경영권 승계 측면에서 볼 때 세대를 거듭할수록 상속과 증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너가의 지분율이 줄어드는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유와 경영의 불일치'다. LG그룹 3대 총수였던 고(故) 구본무 회장은 경영권 정점에 있었지만 소유권 측면에서 볼 때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한 최대주주는 아니었다. 친인척으로 이루어진 40여 명이 넘는 특수관계인과 그룹 비영리재단이 구본무 회장의 소유권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경영권 승계는 주식 지분 승계를 수반하는데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내 많은 기업들이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을 자행했다. LG그룹은 예외였다. 구본무 회장은 '지주사 전환'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소유와 경영의 일치'를 이뤄냈다. 현 구광모 체제도 구본무 회장이 구축해 놓은 소유와 경영의 일치 수혜 덕에 수월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 LG가(家)는 정공법으로 소유과 경영권을 일치시킨 '구본무의 클린 레거시'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을까.

◇스웨덴 보니어그룹 가족주주협의회, LG그룹 그룹정책위원회와 비슷

해외 지배구조 사례에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과 더불어 자주 언급되는 곳이 200년 된 스웨덴의 보니어그룹(Bonnier Group)이다. 보니어그룹은 1804년 코펜하겐에서 게르하르트 보니어(Gerhard Bonnier)가 서점을 개업하며 시작됐다. 8세대에 이른 지금은 다각화된 미디어 재벌로 성장했는데, 6~7대가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보니어그룹은 3세대까지는 한 사람이 단독 경영하는 방식으로 승계가 이루어졌으나 4대째 이르러 형제들이 함께 경영에 참여했다. 5대에 이르러서는 범위가 더 확장돼 사촌경영 단계에 접어들었다. 6세대에 이르러선 주식이 76명에게 분산되며 경영과 소유권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니어그룹 패밀리는 향후 30년 간 주식을 외부에 팔지 않겠다는 법적 효력이 있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보니어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는 가족총회와 가족주주협의회가 있다. 가족총회는 연 1회, 가족주주협의회는 연 2회 개최된다. 가족주주들에게 회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배당정책 및 주식매매에 관한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보니어그룹의 '소유와 경영'에 관련된 지배구조 변화는 4세대 경영에 접어든 LG그룹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니어그룹의 가족주주협의회는 1970년 창업주 구인회 전 회장 별세 이후 첫째 동생 구철회가 중심이 돼 개최한 가족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작된 운영위원회는 가족 중심이었다.

*역대 LG그룹 회장. 구인회, 구자경, 구본무, 구광모 회장(왼쪽부터)
1969년 12월 마지막 날 구인회 전 회장이 별세하자 가족들은 1월 가족회의를 개최해 구인회 장남인 구자경을 그룹회장으로 추대키로 결정했다. 이때 7명의 최고의사결정 협의체인 운영위원회가 구성됐다. 구철회, 구정회, 구태회, 구자경, 허준구 등 집안어른이 주축이 됐다.

이같은 가족주의적 집단의사결정체제는 이후 경영권 승계를 비롯한 LG가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주효한 역할을 했다. 운영위원회는 구본무 체제 들어 회장과 9명의 참모 등 10인으로 구성된 그룹정책위원회로 발전했다. 이전과 비교해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중심에는 여전히 오너일가가 자리했다.

재계는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LG가풍을 감안할 때 4세대 이후에도 당분간은 장자 승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장자 승계 원칙이 언젠가 깨진다 할지라도 LG가문에서 논의를 거쳐 향후 경영자를 선임하지 외부 인물에 경영권을 온전히 내주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전문경영인의 역할 확대에도 주목하고 있다.

◇3·4세대 시기, 경영과 소유 '1인 집중'

LG그룹의 '경영과 소유'는 앞서 예로 든 보니어그룹과 닮아있는듯 하면서도 다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형제경영, 사촌경영 등으로 경영진 범위가 확장됐던 보니어그룹과 달리 LG그룹은 구본무, 구광모 체제를 거치며 소유와 경영의 집중이 강화됐다.

LG그룹은 2세대까지는 형제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했고, 3세대의 경우도 구본준 전 부회장이 구본무 회장을 보좌했다. 4세대에 접어든 이후 LG그룹은 경영과 소유 측면에서 '구광모 1인 체제'를 구축했다.


LG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지주사 ㈜LG의 최대주주는 구광모 회장으로, 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포함하면 최대주주 지분율은 46.15%에 이른다.

30명이 넘는 특수관계인이 대부분 친인척임을 감안하면 LG그룹 소유 구조는 보니어그룹처럼 철저하게 패밀리에 기대고 있다. 다만 특수관계인 가운데 현재 LG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이는 없다. 구광모 회장에 이어 가장 많은 지분(7.72%)을 보유하고 있는 구본준 전 ㈜LG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이 즉위한 이후 경영 일선에서 전면 물러났다. LG그룹 경영권은 오롯이 구광모 1인의 몫인 셈이다.

◇구본무, 지주사 전환 통해 '경영과 소유 일치' 구축

구광모 체제에서 경영과 소유가 완벽하게 일치하게 된 것은 3대 회장 구본무 회장의 공이 크다. ㈜LG 지분율이 6.24%에 불과하던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지분 11.28% 가운데 8.76%를 상속받으면서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반면 구본무 전 회장의 경우 LG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바로 10%가 넘는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된 건 아니었다.

구자경 전 명예회장이 고희(70세)를 맞은 1995년 경영 은퇴를 선언하면서 장남 구본무 전 회장은 LG그룹의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LG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LG화학과 LG전자다. 1997년 말 기준 LG화학은 LG전자를 포함하여 6개의 계열사를, LG전자는 10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구본무 전 회장은 LG화학과 LG전자의 대표이사 회장이었다.


구본무 전 회장은 경영권 정점에 자리했지만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하지는 않았다. 소유권(지분율)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1998년 말 기준 LG화학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17.7%였고, 이 가운데 최대주주 LG연암학원 지분은 1.88%에 불과했다. 나머지 지분(15.82%)은 102명에 달하는 특수관계자들이 보유했다. 정작 그룹 회장인 구본무의 개인 지분은 0.58%에 불과했다. 1%도 안되는 지분율로 LG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양상이었다. 경영권과 소유권이 일치하지 않았다.

LG그룹은 2001년부터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던 지주회사제도가 1999년부터 허용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1년 화학부문 사업지주회사 LGCI를 만들어 화학 계열사를 편입했다. 이듬해 2002년 전자 부문 사업지주회사 LGEI를 설립해 전자 계열사를 편입했다. 사업지주회사 LGCI를 순수지주회사로 전환한 후 LGEI와 합병했다. 그 결과 통합된 순수지주회사인 ㈜LG가 탄생했다. ㈜LG는 2004년 분할을 거쳐 GS홀딩스를 신설했다.

구본무 전 회장이 처음 지주회사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건 2002년이다. 2001년 4월 지주회사가 도입됐을 당시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한 LGCI 지분은 0.69%에 불과했지만 1년 뒤인 2002년 3월 말 기준으로는 4.62%로 뛰어올랐다.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한 통합 지주회사인 ㈜LG에 대한 지분율은 2003년 말 5.46%에서 1년 뒤인 2004년 말에는 10.26%까지 높아졌다. 이후 지분율은 2010년 말 기준 10.72%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18년 5월 별세할 당시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한 지분율은 11.28%였다.

◇LG그룹 장자승계에 관대한 이유, '청렴' 이미지

LG그룹의 네 차례의 분할과 한 번의 합병은 표면적인 이유는 지주사 체제 출범이다. 결과론적으로 구본무 전 회장의 소유권(지분율)이 강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배구조가 외형적으로 단순해지고 투명해졌지만 소유권 측면에서 구본무의 1인체제가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구본무 전 회장의 1인체제는 상속을 통해 구광모 세대에서도 재현됐다.

가족경영이 이뤄지던 LG그룹은 구본무와 구광모 체제 들어 소유와 경영의 융합 밀도를 한껏 높였지만 이에 대한 날선 비판은 없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라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지배구조 개편이었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도 성실 납세를 약속했고, 이를 이행하고 있다.

더벨이 진행한 '2019 LG 인식 조사'에서 그룹 전반 이미지와 관련된 질문에 전문직 종사자 96.2%가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경영과 소유권 이슈에서 국민들이 유독 LG그룹에 관대한 것은 구본무 전 회장이 지주사 체제 과정을 통해 구축해 놓은 LG가의 청렴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이같은 유무형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후세대가 지켜가야 할 유산이 됐다.

기업이 이미지만으로 먹고 살 순 없다. 실력과 실적이 뒷받침 돼야 한다. 성과를 내야 하는 구광모 회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주력 사업에서 삼성에 밀려 '만년 2인자' 소리를 듣고 있다. 변화에 둔감하다는 이미지도 쇄신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사업 지형을 바꿔놓고 있는 가운데 LG그룹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서바이벌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LG그룹이 다음 세대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한 정당성은 오롯이 구광모 회장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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