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8월 12일 08시0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장기CP(기업어음) 발행세가 심상찮다. 올 들어 발행된 장기CP는 2조47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발행량(2조8450억원)을 따라잡기 직전이다. 여기에 부산롯데호텔까지 장기CP 발행대열에 가세하겠다고 밝혔으니 2019년 규모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롯데그룹의 행보가 눈에 띈다. 장기CP 발행사 17곳 가운데 롯데그룹 계열사가 7곳에 이른다.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지주 등 핵심 계열사도 꼈다. 그룹 차원에서 장기CP를 주요 조달 창구로 삼은 셈이다.
‘조달 편의성과 낮은 비용, 크레딧 약점을 감추려는 의도의 합작품’. 장기CP에 대해 한 IB 관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장기CP는 2013년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조치를 취해 사실상 비정상적 방식으로 간주한 조달 수단이다. 장단기 금융시장의 균형을 바로잡고 회사채 시장의 구축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전매제한 조치로 증권신고서 제출의무를 회피하는 등 대기업의 장기CP 발행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론 일부 계열사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항변한다. 규제를 지켰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자금 조달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크레딧 측면에서 약점도 커졌다”며 “민평금리를 방어하기 위해 장기CP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CP는 경제적 실질이 회사채와 같지만 금리체계나 신용평가 시스템은 다르다. 이 때문에 장기CP로 장기자금을 조달해도 발행사의 개별민평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과거 경영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도 회사채 대신 CP를 대거 발행했는데 당시의 데자뷰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롯데그룹의 본보기 효과가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 IB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처음에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 장기CP를 꺼려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대기업도 발행하며 법적으로 걸리지도 않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고 말했다.
장기CP는 단기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평정된다. 이 탓에 CP 신용평가가 왜곡될 수 있다. 또 제아무리 증권신고서를 발행해도 회사채보다 투자자 보호 기능이나 정보투명성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나선다면 점차 장기CP 시장이 왜곡된 채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자님도 같은 물건이면 더 싼 걸 집으시잖아요. 같은 이치 아닌가요?” 장기CP 발행사나 주관사들이 매번 되묻는 말이다. 재무책임자에게는 조달비용을 줄이고 회사의 약점을 감출 수 있는 수단을 택하는 것이 얼핏 ‘선(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선’이 사회의 ‘선’과 다르면 문제는 생긴다. 롯데그룹의 장기CP 발행 확대가 '최선'이었는지 의문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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