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8월 27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축구 주심은 양손에 시계를 찬다. 하나는 경기시간 확인용, 나머지 하나는 '인저리타임(Injury Time)' 측정용이다. 인저리타임이란 쉽게 말해 추가시간이다. 주심은 선수 부상이나 교체, 반칙 등으로 경기가 지연될 경우 정규시간 외 2~5분 가량을 별도 부여한다.인저리타임은 스코어에 따라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다. 지고 있는 팀은 '길수록 환영'이지만 승기를 잡은 팀은 그 반대다. 경기 도중 선수들이 손가락으로 손목을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간이 승패를 뒤바꿀 수 있으니 정확히 관리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6일 세번째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추가 유동성 공급 등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신중한 성격인 정 회장은 즉답 대신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만남으로 공이 다시 정 회장에게 넘어갔다. 산은은 "원만한 M&A 종결을 위해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했다"며 "현산 측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며 이후 일정은 답변 내용에 따라 금호산업 등 매각주체와 협의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의 전례를 살펴보면 정 회장이 언제 입을 열지 예상하기 어렵다. 작년 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의욕이 넘쳤던 그는 딜 후반부로 갈수록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마음 급한 산은과 금호그룹이 옆구리를 찔러야 겨우 반응하는 식이다. 최근 두번의 회동 역시 이 회장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현재 정 회장은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대팀이 있는 축구와는 성격이 달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제한'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축구가 전후반을 합해 90분이듯 아시아나항공 딜은 6개월이다.
물론 추가시간도 있다.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돼 기한 내 거래종결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한다. 사실상 지금이 인저리타임이다. 정규시간은 이미 지난 6월말 끝났다. 코로나19로 해외당국의 승인이 늦어지고 아시아나항공 재무상태가 악화되며 기간이 일부 연장됐다.
문제는 시계를 보고 휘슬을 불 심판이 없다는 점이다. 딜 관계자들이 자체적으로 합의에 도달해야 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쉽지 않다. 정 회장은 코로나가 어느정도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고 싶을 수 있다. 반면 다음달 임기만료를 앞둔 이 회장은 마음이 급하다. 딜을 마무리짓진 못해도 일부 성과를 내야 연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한축구협회장이기도 한 정 회장은 재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축구광'이다. 경기 관람 뿐 아니라 직접 뛰는 것도 즐긴다고 하니 '정해진 시간'의 중요성을 충분히 잘 알 테다. 축구든 M&A든 시간제한은 '룰'이다. 누구도 무한정 쓸 수는 없다. 정 회장의 빠른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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