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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친환경 패션기업 케링의 역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4-30 08:00:05

이 기사는 2021년 04월 30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프랑스의 케링(Kering)은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가 1963년에 창업한 명품·패션회사다. 2019년 파리 노트르담대성당 화재 때 1억1300만 달러를 보수기금으로 내놓았던 피노 패밀리 소유의 지주회사 아르테미스(Artémis)가 41% 지분을 가진다.

창업자 피노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부친이 목재상이었다. 열여섯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학교에서 농사꾼집 촌뜨기라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제리전쟁에 참전했고 돌아와서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부친 사망 후 팔아버리고 1963년에 새로 목재상을 시작했다. 사업 능력이 탁월해서 1988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피노주식회사를 파리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후 유통업에 진출한다. 대형 M&A 몇 건을 성사시키고 인수한 회사들 중 두 개의 이름을 더해 회사를 PPR로 개칭했다. 서울에도 한때 쁘렝땅백화점이 있었다.

1999년에 있었던 PPR과 LVMH 사이의 구찌 인수전은 자수성가한 흙수저 출신 피노 회장과 그랑제꼴인 에꼴 폴리테크닉 출신 아르노 회장 사이의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프랑스 사회의 관심사였다. 프랑스 재계는 정계와 사회 전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엘리트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피노 회장과 같은 입지전적 인물들도 드물지 않은데 그 사건에서는 두 인물의 배경이 대비되어 부각되었다. 프랑스의 기업지배구조는 엘리트주의와 관-재계간의 긴밀한 인적 교류가 특징이다. 엘리트 학교 출신들이 정, 관계와 재계를 거의 전부 장악하고 있고 극히 소수인 자수성가형 경영자들이 일군을 형성한다. PPR이 LVMH의 딜에 개입한 것은 프랑스 기업지배구조에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와 그에 대한 견제가 배경이다. 구찌는 PPR에 인수되었다.

2005년에 2세인 프랑수아-앙리 피노가 PPR 경영권을 승계했다. 앙리 피노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으로 꼽는 파리의 HEC 출신이다. 1987년부터 PPR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차근차근 승진해 회장이 되었다. 케링 포함 19개 계열사 이사직을 가지고 있다. 앙리 피노는 부친이 했던 것처럼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다수의 브랜드를 그룹에 추가했다. 나중에 되팔기는 했지만 독일의 푸마도 그에 포함된다. 2013년에 이름을 케링으로 바꾸었다. M&A를 통한 브랜드 확보가 어느 정도 완결되어서 2019년 이후부터는 유기적 성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케링은 2019년 매출 154억 유로로 전년 대비 16%대 성장의 성과를 거두었다. 2세 경영권 승계는 성공이었다.

피노 패밀리는 아르테미스를 통해 영국의 유서 깊은 경매회사 크리스티도 인수했다. 크리스티는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크리스티(James Christie)가 1766년에 세운 것이다. 장남인 크리스티 2세가 가업을 승계해 크게 성장시켰다. 크리스티 2세는 명문 이튼스쿨을 나왔고 가족들은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려 했다. 그러나 부친 사망 후 바로 가족회사를 이어받았다. 평생 고전과 역사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크리스티는 가족회사로 4대까지 승계되다가 1889년에 창업자의 증손자가 은퇴하면서 가족경영에서 벗어났다. 1973년에 런던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 되었다. 1997년 스스로를 경매에 부쳤지만 낙찰되지 못했고 1998년에 PPR이 12억 달러에 매입해 상장폐지되었다.

피노 회장은 환경보호를 의식하는 지속가능경영의 신봉자다. 그래서 케링은 특히 2012년부터 지속가능성장에 천착해왔다. 친환경 플랜을 가동하면서 회사 내에 EP&L(Environmental Profit & Loss)계정을 열었다. EP&L은 친환경 플랜의 진전을 평가해 재무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회계기법이다. 2017년에는 UN의 프로그램(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정합하도록 2025년까지 제품원료의 생산과 가공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40% 감소시킨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2019년에는 탄소 제로(0) 목표도 선언했다.

케링은 2009년 파리에 케링 재단(Kering Foundation)을 설립해서 여성인권 신장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조력한다. 피노 회장이 재단 이사장이고 부인 영화배우 셀마 헤이엑도 이사로 있다. 이 재단은 여성운동가로도 유명한 헤이엑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케링은 2019년에 동물복지에 관한 EU의 표준을 준수하기로 결정했고 18세 미만 모델의 화보 촬영과 패션쇼 출연을 금지했다. 케링과 피노 회장의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마크롱 대통령은 앙리 피노 회장에게 관련 산업 내 지속가능성장 이념을 존중하는 유대를 촉진시키도록 요청했고 그 결과로 32개 패션기업이 친환경 이념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협정에 조인하는 결실을 이루어 냈다. 피노 회장은 환경운동 구호인 “Green is the New Black”을 빌려 자신의 경영 방침을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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