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8월 04일 07시4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용평가업계에는 오랜 트라우마가 있다. 기업 고객에게 높은 신용등급을 퍼줬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등급쇼핑’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이 트라우마를 떨치고자 각종 이해상충방지 시스템을 마련했다. 금융당국도 해마다 엄격하게 점검한다. 덕분에 평판도 상당히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그런데 엉뚱한 데서 등급쇼핑 의혹이 또 불거졌다. 도화선은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산업 분류체계) 제정이다. 환경부가 다른 정부부처와 산업계의 의견을 계속 수렴하고 있지만 K택소노미가 나오면 발전소와 화학사 등 화석연료 관련 업종은 녹색채권을 발행하기가 어려워진다.
K택소노미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 모두 기업의 입장만 대변한다”며 “화석연료 관련 기업들이 녹색채권을 발행하며 1등급을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경하게 지적했다.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이 등급장사를 벌이며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조장한다는 거친 말까지 들린다.
물론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은 이런 의혹이 억울할 수 있다.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ESG채권) 시장이 열린 건 K택소노미가 논의되기 전이다. 당시 이 기관들은 치열하게 스터디한 끝에 ICMA(국제자본시장협회)와 UN의 기준을 바탕으로 자체적 녹색산업 분류체계를 세웠다. 또 신용평가사 덕분에 프로젝트가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됐다는 의의도 크다.
회계법인은 오랜기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분야에서 기업과 호흡하며 SRI채권 검증시장을 열었다. 기업 감사 경험치를 십분 활용해 깐깐하게 관리체계를 뜯어볼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런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은 갈수록 오명을 떨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SRI채권을 방법론에 맞게 인증했는지, 인증 내용이 사실인지 감독하는 기관이나 규제가 없다.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는 SRI채권 발행사에서 직접 인증수수료를 받아야 한다. 등급장사를 해도 막을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 이들의 평판이 떨어질 때는 원화 SRI채권 시장이 망가진 뒤일 터다.
물론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발행사가 아닌 투자자가 SRI채권 인증·검증기관을 선택해야 한다"며 "기금을 만들어 인증·검증기관이 SRI채권 인증수수료를 발행사에서 직접 받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와 주관사가 나서야 규제없이도 시장이 깨끗해진다는 취지다.
손 놓고 앉아 인증기관이 수익을 생각지 않고 오직 시장의 발전만을 위해 뛰길 바라는 건 당국과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 모두의 태만이자 방임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다. SRI채권 인증·검증 시스템을 보면 이 말이 꼭 들어맞다. 맡은 생선을 먹었다고 고양이를 탓하는 건 어리석다. 처음부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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