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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결합 심사를 묻다]'경쟁 파수꾼' 공정위, 부득불 갈등의 역사③기업과 산업 발전 우선시 하는 다른 부처들과 '엇박자 반복'

양도웅 기자공개 2021-11-01 07:51:55

[편집자주]

M&A(인수합병)는 ‘돈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해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위로 돌아간다. 독과점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심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더벨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M&A를 중심으로 '기업결합 심사'라는 고차 방정식을 다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26일 16:1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무엇일까. 경쟁 시스템 유지일까, 아니면 기업과 산업의 발전일까. 이 질문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답은 명확하다. 조직명에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듯이 바로 '경쟁 시스템 유지=독과점 방지'이다.

1981년 공정거래법이라고 불리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시행으로 설립된 공정위는 굵직굵직한 기업결합 심사 때마다 기업(산업)을 책임지는 다른 정부기관들과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경쟁 시스템 유지를 중요시 하는 공정위와 기업과 산업의 발전을 우선시 하는 부처들 간의 갈등이 반복됐던 셈이다.

◇ '공정위 vs. 他 정부기관 갈등' 2000년대부터 본격화

기업결합 영역에서 공정위가 다른 정부기관들과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한 때는 대략 2000년대 초반으로 분석된다. 그 이전까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 차원의 대목표 아래 공정위도 독과점보다는 담합 여부 등에 초점을 맞춰 움직였다. 공정위 내에 기업결합과가 따로 만들어진 때도 1996년이었다.

하지만 1997년 말 발생한 IMF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업들 간의 경제력 양극화가 극심해지자, 공정위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대기업들의 기업결합에 대해 전보다 엄격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여러 국가와 FTA를 체결하며 높아진 글로벌 스탠다드를 수용하라는 요구에 입각한 선택이기도 했다.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왼쪽)과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공정위의 이러한 변화에 여전히 국내 산업 및 기업 발전을 목표로 하는 다른 정부기관들이 불만을 품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례로 2007년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공정위 직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특정 장치산업의 경우 기업 스스로 (기업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허용해주는 게 좋다"고 공정위를 직격했다.

2000년대 중반은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중국과 중동 지역 기업들의 성장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던 때였다. 하지만 구조조정 방법 중 하나인 기업결합에 대해 승인 권한을 쥔 공정위의 정책적 배려 없이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 장관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공정위를 이끌던 권오승 위원장은 "산자부와 공정위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추어지지만 그런 과정들이 다 우리 경제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양 기관 간의 불협화음이 있던 점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 SKT-CJ헬로비전 기업결합 불허, 방송·통신업계 사상 첫 사례

2000년대부터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기준이 엄격해졌다고 하지만 불허와 시정조치 횟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건 아니었다. 공정위는 특정 기업결합이 경쟁 제한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조적 조치(일부 사업부 매각)와 행태적 조치(요금 인상 한시적 금지) 등을 취한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시정조치 비율은 매년 1%를 밑돌았다.

기업결합을 막은 사례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가 기업결합에 대해 불허 등을 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공정위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그리고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린 사례는 상징적이다.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이는 방송·통신업계의 사상 첫 기업결합 '불허' 사례였다. 당시 최소 '조건부 승인' 정도를 예상하던 관련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부적으로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느라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당시에 유튜브와 넷플릭스·왓챠 등 OTT 서비스의 등장으로 방송 콘텐츠 시장은 한층 더 커지고 경쟁도 더 치열해지던 때였다. 이를 고려해 방통위와 미래부 등에선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대형 방송·통신 사업자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결론은 불허였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는 중단됐다. 법률상 공정위와 과기부, 미래부 가운데 한 곳이라도 불허를 하면 기업결합이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공정위 명령은 행정 처분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다툴 수 있지만 소송 기간이 어림잡아 3~5년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기업결합 심사 시 경쟁 제한성 여부 판단이 가장 중요"

여러 면에서 기업결합의 필요성이 있던 시기에 공정위가 불허를 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결과론적이지만 이후 CJ헬로비전은 LG유플러스에 인수돼 현재는 LG헬로비전이 됐다. 흥미롭게도 LG유플러스는 당시 독과점 이유로 경쟁사인 SK텔레콤의 인수를 반대했던 곳이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공정위의 최신 '기업결합 신고가이드북(2019년판)'에서 찾을 수 있다. "동 기업결합(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이 이뤄질 경우, 23개 지역 유료방송 시장 및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압력이 크게 감소하고 시장에서의 독과점적 구조가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될 것으로 예상됨."

이처럼 공정위의 경쟁 시스템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와 입장이 다른 정부기관들과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KDB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은 9개월 넘게 결론이 나지 않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왼쪽)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이 회장의 근거는 역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필요성'이었다. 그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결합은 대한민국 항공산업 생존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라며 "이런 상황을 감안해 조속히 승인 절차를 밟아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발언이 있고 난 뒤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꺼낸 키워드도 예상대로 '경쟁 제한성'이었다. 그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경쟁 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공정위 심사관의 의견"이라며 "국토교통부와 함께 경쟁 제한성 완화를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 시 경쟁 제한성 여부를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경쟁 제한성 여부가 '있다'는 점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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