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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디젤게이트 복기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02-03 09:00:38

이 기사는 2022년 02월 03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5년 9월 폭스바겐 주가가 대폭락했다. 이른바 ‘디젤게이트’ 때문이다. 게이트 첫날 17% 하락해서 시총 20조가 증발했다. 클린디젤을 내세우던 폭스바겐은 160만 대 차량의 ECU에 특수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는데 이 소프트웨어는 차가 통상적인 주행 중인지 아니면 검사를 받고 있는지 탐지해서 후자의 경우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낮아지게 했다. 반대로, 통상 주행 중에는 미국이 규제하는 배기가스 기준의 무려 40배를 넘는 매연을 배출하도록 방치했다.

세계 각국에서 조사와 제재, 소송과 책임자 처벌이 따랐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 체제에서 가장 촉망받던 CEO 마틴 빈터코른이 사임했다. 빈터코른은 자회사 아우디 회장직에서도 내려왔다. 미국과 독일 양국에서 형사소추되었다. 빈터코른은 독일 상장회사 CEO들 중 최고연봉을 자랑하던 스타 경영자였다.

당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두고 다들 의아했다. 폭스바겐, 아우디 모두 잘 굴러가고 있었다. 폭스바겐이 그런 무리수를 쓸 정도로 답답할 이유가 없었다. 디젤게이트로 휘청해 토요타에 판매 1위를 내주었지만 2016년에 다시 1위를 되찾은 저력의 폭스바겐이다. 디젤차 판매가 없던 중국 시장의 덕을 크게 봤다. 그리고 정직이 국가적 이미지인 독일 대표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독일의 대표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딱정벌레차의 장례식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미국과 일본을 지목하는 경솔한 음모론도 횡행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이제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에 대한 차분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언론들이야 오래전에 관심을 껐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독일답게 깊이 있는 복기와 분석이 조금씩 수행되고 발표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것 같다.

시작은 폭스바겐의 미국 승용차시장 공략 계획이었다. 토요타가 하이브리드인 프리우스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는데 독일회사들은 하이브리드에 확신이 없어 폭스바겐은 그 대신 클린디젤로 승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디젤에서 앞서가던 다임러가 기술협조를 해주겠다고 한 것을 거절했다. 자존심과 상황판단의 오류다. 다임러와의 제휴 가능성을 폐기한 사람이 당시 신임 CEO 빈터코른이다.

기술진은 회사의 미국 시장 진출 계획이 무리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진의 압박이 극심했다. 여기에 빈터코른의 스타일이 작용했다. 빈터코른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같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일에 미쳐서 사는 사람이었다. 임직원들을 끊임없이 푸시했고 사람들은 CEO의 폭풍에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슈피겔은 폭스바겐이 ‘강제 노역장만 없는 북한’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디젤게이트는 첫째, 미래 기술에 대한 잘못된 전망, 둘째, 자체 기술 수준에 대한 잘못된 평가, 셋째, 전근대적인 경영 스타일 세 박자가 빚어낸 참사다. 이 요인들이 겹쳐져서 작업 현장에서는 기술이 아니라 속임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하여, 미국의 환경당국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 후로 상당한 시간이 주어졌고 잘 대처했으면 적당한 제재와 리콜, 생산 중단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경영진이 미적미적 크게 키웠다.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는 지배구조 문제다. 독일의 한 저널리스트(마크 슈나이더)는 폭스바겐이 ‘금지된 사탕 봉지를 들고 있다가 엄마에게 들켰지만 잘못을 깨닿지 못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고 비유한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폭스바겐이 자사의 고객에 무심했다는 사실이다. 환경에 해로운 방향이라는 것을 떠나서, 디젤로 승부하고 나아가 다량으로 유독물질을 배출한다는 결정은 바로 그 차량을 구매하는 회사 고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 즉, 고객가치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파괴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내 회사 물건을 산 고객을 남의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건의 사법처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학교와 기업에서도 두고두고 복기하면서 살펴보아야 할 사건이다. 이 사건은 특히, 친환경과 사회적 가치가 고객가치, 주주가치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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