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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이라는 바둑 한 판 thebell note

김규희 기자공개 2022-01-20 07:57:23

이 기사는 2022년 01월 19일 07: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바둑판에 세상사가 담겨있다.” 어릴적 공부 잘하는 친구 따라 등 떠밀려 다녔던 기원에서 만난 사범이 한 말이다. 흑돌, 백돌, 집, 패, 환격, 사활.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기초적인 바둑 규칙뿐이지만 이상하게도 저 말은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있다.

두 달 남짓한 경험 이후 바둑은 곧바로 멀어졌다. 자리에 앉아 골똘히 수를 읽기보다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는 게 천성에 맞았다. 1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다시 바둑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낯익은 바둑용어를 접하면서다.

최근 딜이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을 보면서 다시 바둑이 생각났다. 본계약 체결에서부터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심사 불허까지 인수합병 과정을 바둑에 빗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2019년 3월 인수자로 현대중공업을 택한 게 ‘패착’이었다. 당초 산업은행은 국내 ‘빅3’ 중 시장 점유율이 가장 낮은 삼성중공업에 매각을 시도했다. 상대적으로 독과점 우려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꽃놀이패’를 쥔 형국이었다. 적은 돈을 들여 최대 경쟁사인 대우조선을 인수할 수 있었다. 인수가 불발되더라도 대우조선에 투입하기로 한 1조5000억원과 추가 지원금 1조원 등 2조5000억원을 신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는 등 경영체제 개편도 가능했다.

현대중공업은 형국을 잘 활용했다. 기업결합 심사를 담당한 EU 집행위원회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독과점 우려 해소 방안을 요구했지만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LNG 선박 가격 유지 및 중소 조선소에 대한 기술 일부 이전 등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딜 내내 EU와 '만년패' 형국을 유지했다. 만년패는 양쪽 모두 싸움을 꺼려 끝까지 남겨두는 자리를 뜻한다. 공정위는 3년 전엔 어느 경쟁당국보다 먼저 결정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주요 발주사가 모여있는 EU 의견과 엇갈리지 않기 위해 판단을 미루고 미뤄왔다. 결국 EU가 먼저 최종 불허했고 공정위는 손 안 대고 코를 풀었다.

이번 판을 가져간 건 현대중공업이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산업은행의 ‘승부수’가 남아있다. 현재 조선산업은 다시 활황으로 접어들었다. 대우조선도 지난해 목표 수주량의 141%를 달성하는 등 여력이 남아있다. 포스코, SM그룹, 효성그룹 등 잠재 인수후보도 거론된다. 과거 등 떠밀기식 매각에서 벗어나 경영 정상화라는 '정수'를 통해 역전승을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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