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3월 08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 홍보팀은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의 대외용 공식 사진을 배포했다. 보는 순간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블랙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은 권 부회장. 여기에 둥근 안경테, 짧은 머리, 짧게 기른 수염까지 과거 정장 스타일의 권 부회장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단정하게 정리한 눈썹과 매끈한 피부톤은 60대가 아니라 50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세련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권 부회장은 1957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65세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보시길)


블랙 터틀넥과 청바지, 동그란 안경을 뚫고 나오는 형형한 눈빛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콘이다.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떠오른다.

권 부회장의 애플 사랑은 유명하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경영 일선에도 물러날 때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LG에너지솔루션 홍보팀이 이 사진을 배포하자 재계에서는 의아함을 넘어 "너무 노골적으로 잡스 따라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노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잠시 시계추를 돌려 권 부회장의 이력을 살펴보자.

권 부회장은 LG의 산증인과 다름없다. LG그룹에서 거쳐야할 자리, 해야할 일은 모두 해봤다. 경기고를 1975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간다.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 기획팀으로 입사하며 금성맨이 됐다. 입사 27년만에 기업의 꽃인 사장에 오른다. 2006년 LG전자에서 재경부문장 사장직에 임명됐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그룹의 핵심 위치를 모두 거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력은 구광모 회장 시대의 첫 3년을 함께한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그룹 2인자'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총수 교체 시기 그룹을 안정화하는 작업이 권 부회장의 몫이었다. 권 부회장은 ㈜LG 대표이사를 비롯해 LG전자·LG화학·LG유플러스·LG디스플레이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이사회에 모두 참여하며 계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다잡았다.

실제 권 부회장은 LG전자의 ZKW 인수와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 LG전자-마그나인터내셔널 합작법인 설립,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LG전자 휴대폰 사업 철수 등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분쟁, 현대차 리콜 이슈 등 구 회장이 안착할 수 있도록 그룹 안팎의 중차대한 이슈를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본질이 월급쟁이인 탓에 2인자, 그룹 실세라는 말을 질색했지만 현실은 그랬다. 그런 인물이 지난해 비상장 신생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그룹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생기업 수장으로 간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대단했다. 권 부회장은 복귀 직후 LG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LG에너지솔루션 IPO를 성사시키며 '역시 권영수'라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기까지가 외부에 공개된 권영수의 이야기다. 회사 안팎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사실 임직원들에게 쉬운 CEO는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원리원칙을 철저히 따지는 'FM형'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존재감만으로 조직에 긴장감을 주는 인물인 셈이다.

책임이 주어지면 이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집념도 강하다.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을 각각 LCD패널과 전기차배터리 분야의 1위 기업으로 만들면서 '1등 전도사' '1등주의자'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권 부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거나 관심이 가는 일에 대해선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권영수식 경영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 점에서 '혁신'을 추구한 스티브 잡스와 연결성을 갖고 있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래서 혁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스티브 잡스를 닮으려는 노력이 부질없는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천재들에게 혁신이라는 것은 모방을 통해 ‘다름’과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를 따라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기업을 통해 권영수 자신만의 '혁신'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혁신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알 길이 없다.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의 혁신일 수도, 모든 직원들이 행복해하는 기업 문화의 혁신일 수도,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혁신일 수도, 혹은 이 모든 총합일 수도 있다.

막중한 책임을 진 그룹 2인자 자리에서 내려온 권 부회장의 경쾌한 스텝이 사진에서 느껴진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와 대비해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부각한 사진은 권영수식 '혁신'이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