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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지폐 속 '거북선'이 이끈 기적, 글로벌 넘버 1 등극②첫삽 2년여 만에 준공식·명명식 동시 개최...정주영 창업주 도전정신의 역사

유수진 기자공개 2022-03-23 08:40:38

[편집자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500원 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내보이고 얻은 차관으로 출범한 현대중공업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모두가 안 될 거라 했던 조선사업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NO.1’이 됐고 엔진기계와 그린에너지, 건설장비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는 ‘3세’ 정기선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쉽 빌더(ship builder)’에서 ‘퓨쳐 빌더(future builder)’로의 도약을 이끈다. 더벨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21일 14: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거북선이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오.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정주영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 중>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주머니에서 꺼낸 500원짜리 지폐를 롱바톰 A&P 애플도어 회장 눈앞에 펴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얻으려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지폐 속 거북선을 유심히 살펴보던 롱바톰 회장은 현대건설이 대형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써줬다. 배를 건조한 경험은 커녕 조선소를 지을 부지조차 확보하지 못했던 1970년의 일이다.

◇'불굴의 의지'로 차관 도입, 조선소 건설·선박 건조 '병행'

오는 23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역사는 500원 짜리 지폐 속 '거북선'과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중반부터 조선업을 마음에 품고 있던 정 창업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가기간산업 육성에 나선 정부의 권유에 따라 조선소 건설을 결심했다. 1970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를 발족한 게 시초다.

500원 지폐 속 거북선 모습. <출처:아산 정주영 닷컴>

하지만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당장 조선소를 지을 돈을 마련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미국과 일본에서의 좌절을 딛고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겨우 추천서를 받았으나 끝이 아니었다. 영국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주려면 영국수출신용보증국의 보증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선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증명'을 갖고 와야 했다.

선박을 건조할 조선소가 없는 상황에서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무작정 배를 주문할 선주를 찾아 나섰다. 수중엔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지역 지도(축척 5만분의 1) 한 장, 26만톤급 유조선 도면이 전부였다. 정 창업주는 "당신이 배를 사주면 내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주겠다고 미친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인 소리를 하고 다녔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롱바톰 회장이 소개해준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를 설득해 26만톤 유조선 두척 수주에 성공했다. 1970년 12월 계약금으로 받은 14억원을 입금한 뒤 마침내 영국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승인받았다.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서독, 스웨덴 등 다른 유럽의 은행들로부터 줄줄이 차관을 도입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조선소 부지 매입을 시작했다.

1972년 3월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현대조선소 기공식이 열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첫삽을 뜬 이날을 '창립일'로 삼고 있다. 이 자리엔 박정희 대통령과 태완선 부총리 등 정부 관료들이 총출동했다. 박 전 대통령이 기공식에 참석한 것은 포항제철에 이어 두 번째였다.

당시 정 창업주는 '우선 조선소를 빨리 만들어놓고 일해가면서 고쳐 쓰자'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풍부한 건설업 경험이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1973년 12월 '현대조선중공업'을 본격 출범시키고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리고 방파제를 쌓고 도크를 파 조선소를 지으면서 주문받은 선박을 만들었다.

근로자를 격려하는 정주영 창업주의 모습. <사진:현대중공업그룹>

1단계 준공을 완료하는 데 2년3개월이 걸렸다. 최대 선(船) 건조능력 70만톤, 부지 60만평, 70만톤급 드라이도크 2기를 갖춘 조선소가 단기간에 지어졌다. 심지어 그 사이 배도 완성됐다. 1974년 6월 울산조선소 준공식과 선박 명명식이 동시에 진행됐다. 글로벌 조선사(史)에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조선소 건설에 최소 3년이 걸리고 그 뒤에야 선박 건조를 시작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정 창업주의 '불굴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현대중공업·미포조선·삼호중공업 삼각 편대, 압도적 '글로벌 1위'

현대중공업은 빠르게 사업을 키워나갔다. 바로 다음해 현대미포조선을 설립하고 수리조선사업에 진출했다. 곧바로 세번째 도크도 완공했다. 쿠웨이트 UASC사로부터 2만3000톤급 다목적운반선 15척을 수주한데 이어 스웨덴 스테나라인사의 주문(로로컨테이너선)도 받았다. 엔진사업부와 중전기사업부를 잇따라 발족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 현대엔진공업·현대중전기으로 독립시켰다.

사명에서 '조선'을 떼고 현대중공업으로 거듭난 건 1978년 2월이다. 이듬해 현대엔진이 세계 최대 선박 엔진공장을 준공하고 시운전에 들어갔고 미포조선은 15만톤급 수리전용 도크를 준공했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건조(2만6000톤급)하고 1980년 5월 자동차운반선·12월 한국형 구축함(2000톤급)을 인도하며 선종을 다양화했다.

1980년 1월 일본 다이아몬드사가 선정한 조선분야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리는 등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소를 기공한지 8년 만의 일이다. 1985년 생산고 기준 세계 1위 조선사에 선정됐고 이듬해 12월 선박인도 1000만GT(총톤수·누계 335척)를 달성했다. GT는 선수부터 선미까지에 이르는 갑판 이하의 선내 전 용적을 환산한 단위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만1700TEU급 컨테이너선과 현대중공업 전경. <출처:현대중공업>

1992년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이던 4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명명식을 열기도 했다. 국내 조선사 최초로 LNG선을 진수한 건 1993년 2월이다. 1999년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뒤로도 꾸준히 수주 실적을 쌓아왔다. 그러다 현대그룹이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며 2002년 2월 계열분리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출범했다. 정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조선·중공업을 맡았다.

2002년 삼호중공업을 인수하고 2008년 군산조선소 기공식을 여는 등 지속적으로 덩치를 불렸다. 2002년 10월 선박인도가 5000만GT를 돌파한데 이어 2012년 3월 1억GT를 넘겼다. 이는 2011년 전세계 총 선박건조량(1억40만GT)과 비슷한 수치다. 육상건조와 선박침수, T도크 등 신공법을 개발해 건조능력을 지속 확대한 결과다.

이후 현대오일뱅크 인수를 통해 에너지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했고 태양광과 풍력 등 그린에너지사업에도 속도를 냈다. 2015년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선박 2000척을, 현대미포조선과 삼호중공업이 각각 800척, 600척을 인도하며 압도적인 글로벌 1위 조선·중공업그룹로 자리잡았다.

2017년 현대중공업과 현대로보틱스,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로 사업을 분할하며 지주사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듬해 3월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를, 2019년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출범시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2015년 시작된 조선업 불황으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다시 수주낭보가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한국조선해양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조선부문 수주잔고는 32조9688억원으로 2014년 이후 최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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