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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행동주의 펀드, KCGI 투자 명암은 명분 대신 실리, 수익률 방점에 지배구조 개선 의미 퇴색 '멍에'

조세훈 기자공개 2022-03-30 07:55:25

이 기사는 2022년 03월 29일 10: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KCGI의 실험이 한진칼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경영권 분쟁을 통해 주가를 높여 수익은 실현했지만 당초 목표했던 경영권 장악과 주주가치 제고 등은 이루지 못했다.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등 일부 긍정적 면도 있지만 오너일가를 동맹군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명분을 무너뜨리고도 실익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실패로 한국형 행동주의펀드의 존립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KCGI는 2018년 한진칼을 구태기업으로 규정하고 행동주의 펀드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매수한 뒤 경영 참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운용된다.

한진은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폭행 등 오너일가가 연루된 여러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곳이다. KCGI는 지배개선 여론을 무기삼아 지배구조가 취약한 한진칼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2018년 11월 9%의 지분을 취득해 2대 주주가 됐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을 늘렸다.

이듬해 조양호 회장의 작고로 한진칼 지분 상속이 이뤄지면서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KCGI는 일부 지분을 상속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새롭게 지분을 취득한 반도그룹과 3자연합을 결성했다. 조원태 회장 측과 엎치락 뒤치락 하며 한치 앞을 모르는 경영권 다툼을 이어갔다.

KCGI는 행동주의 펀드 출범의 명분으로 삼은 '땅콩 회항'의 주역과 손을 잡으며 비판을 받았지만 경영권 확보라는 실리를 더 우선시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 펀드로서의 명분이 크게 퇴색되면서 수익을 위한 이해관계자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경영권 분쟁 3라운드는 산업은행의 등장으로 조원태 회장 측이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한진칼 지분 10.66%를 확보한 산업은행이 조 회장을 지지하면서 3자연합의 생명력은 사실상 끝났다.

엑시트(투자금 회수)만 남은 KCGI는 호반건설에 지분을 전량 넘기며 쏠쏠한 수익을 얻었다. 다만 행동주의펀드를 표방한 부담때문인지 KCGI는 "단기적으로 주가만 부양해 큰 수익을 얻는 것을 지양했다"며 "시장 매각 방식이 아닌 일괄 매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한국형 행동주의가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는 평가다. KCGI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를 정관에 명시해 지배구조의 개선을 이뤘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도 2020년 1분기 1222%에서 2021년 말 기준 289%로 개선됐다.

다만 이같은 성과에도 수익만 얻은채 명분 없는 퇴각을 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의미를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향후 다른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입지가 좁아지고 행동 반경도 축소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주홍글씨 꼬리표'가 KCGI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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