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0월 05일 08시1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800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을 때였다. 높은 산맥을 넘자니 수만의 병력으로도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스위스의 부르생피에르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도와준 데 따른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다며 차용증까지 써줬다. 이후 나폴레옹의 시대가 저물면서 빚도 함께 사라지는 듯 했다.그로부터 184년 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스위스를 방문했다. 부르생피에르 마을 대표는 당시 나폴레옹이 써준 차용증을 보여주며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깜짝 놀랐지만 흔쾌히 원금을 갚으며 해묵은 빚을 청산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사례가 있다. 강원도다. 레고랜드 테마파크사업의 PF론(Loan)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ABCP에 대해 지급금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무려 2050억원에 달한다.
강원도는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유동화SPC인 아이원제일차에 대신 지급하기로 약속하며 신용을 보강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대신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법원에 신청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불길한 징조는 진작부터 나타났다. 1년 전 강원도의회 경제건설위원회 임시회에서다. 당시 회의에서는 이자율이 너무 높다며 차라리 강원중도개발공사를 부도낸 뒤 사업을 진행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 기존에 매매계약이 이뤄진 땅에 대해 원금만 돌려주고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강원도는 이런 절차를 밟은 뒤 땅을 더 비싼 값에 다시 팔아 빚을 갚으려는 속셈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강원도의 이런 계산으로 자본시장 내 평판에 금이 갔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도는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해왔다”며 “이번 강원도의 지급의무 불이행은 이런 판단근거를 훼손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에 버금가는 신용도를 앞세워 강원도가 자금을 조달했지만 결국 지급의무를 지키지 않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신용까지 흠집을 냈다는 의미다.
후폭풍은 자명하다. 앞으로 강원도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지자체도 투자자에게 신뢰를 받기가 어려워 자금을 조달하기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 평판 리스크의 현실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미테랑 대통령은 왜 빚을 갚았을까. 비록 수백년이 지나 작은 소동처럼 보여도 이 빚을 갚아야 프랑스의 신용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강원도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까. 만기가 짧은 빚조차 갚지 않아 앞으로 적은 돈마저 빌리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도민의 세금을 조금 아끼려다가 더 큰 돈을 무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을까. 강원도의 차용증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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